바다에서 특진하는 방법[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3〉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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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해양대를 졸업하면 3등 항해사가 되고, 2년 승선 근무를 마치면 2등 항해사로 진급한다. 그런데 1년 만에 초특급 승진한 동기생도 있다. 그 비결은 무얼까?

유조선이 한국에 입항하기 전 부두가 준비되지 않으면 회사는 기관감속(slow steaming)을 지시한다. 속력을 낮춰서 오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연료비가 적게 든다. 시속 20km로 항해하던 배의 속도가 10km 정도로 떨어진다. 이제 낚시가 가능해진다. 당직이 아닌 선원들은 뱃전에 붙어서 낚시를 즐긴다. 간혹 큰 고기들이 잡혀서 무료한 선상 생활을 즐겁게 해준다. 낚시 도구 장만은 선박에서 3등 항해사 담당이다.

동기생은 선박이 기항할 때마다 낚시 가게를 찾아가서 낚시 도구를 잘 장만해 왔다. 한 번도 아니고 꾸준하게 준비를 잘했다. 성실한 그의 태도가 선장은 물론이고 선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침 2등 항해사 자리가 비게 됐다. 그래서 선장은 “진급을 상신합니다”라는 전보를 회사에 보내 결국 특진이 됐다. 그래서 2년이 필요한 진급을 1년 만에 달성한 것이다. 특진을 하려면 낚시가 가능한 유조선을 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다.

선장의 당직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개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 3등 항해사와 함께 선교에서 근무한다. 선장들은 당직 후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에는 취미생활을 즐긴다. 운동 후 목욕을 즐기는 선장이 있었다. 하루는 목욕을 하려고 그가 탕에 들어갔는데 물이 푸른색이더란다. 몸을 물에 담그니 향긋한 향기까지 났다.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는 다른 색깔과 조금 다른 향이 났다. 항해 내내 이런 호사를 누렸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나서 조리사가 하선하게 됐다. 선장은 “본인이 만난 가장 훌륭한 급사입니다. 조리사의 후임으로 특진을 요청합니다”라는 내용의 전보를 회사에 보냈다. 바로 특진이 되었단다.

그러나 ‘선장으로의 진급’은 다르다. 꼼꼼하게 다양한 자질을 검증한다. 선장은 선박의 총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우선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선장은 선주의 대리인이므로 선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마냥 마음만 좋아서는 안 된다. 무언가 ‘한칼’을 보여줘야 한다.

어떤 1등 항해사가 분위기가 좋지 않은 선박에 해결사로 올라갔다. 원목선인데 목숨수당이 없어서 선원들의 불평이 심했다. 그는 왜 다른 선박에 있는 원목선 목숨수당이 없느냐고 한국의 송출 대리점에 가서 항의를 했다. 본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그는 당장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전체 목숨수당 중 자신이 절반을 낼 터이니 회사에서 절반을 내어달라고 했다. 송출 회사는 본사의 허락 없이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다. 출항하기 전 그는 서류를 기안해서 본사에 보냈다. 곧 본사에서 허락이 나서 소급 적용된 목숨수당을 받게 됐다. 회사는 불편했지만 이런 1등 항해사라면 선주의 이익과 함께 선원, 선박 그리고 화물을 잘 보호할 선장이 될 것으로 보았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장으로 쉽게 진급할 수 있었다.

이런 특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대개 과장이 되고, 전설과 영웅이 만들어진다. 따분한 바다 생활에 웃음거리를 제공한다. 세 번째는 나의 이야기인데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바다#특진#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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