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형식 파괴 ‘얼굴 자막’ 재미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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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서 유행하던 ‘독특한 자막’, 일부 지상파-케이블 채널도 영향
‘자막 때문에 본다’는 시청자 늘어

네이버 VLIVE ‘BTS’ 채널에서 멤버 진의 얼굴을 활용해 자막 “우와”(왼쪽 사진)를 표현한 장면.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비책’ 채널도 그의 얼굴을 활용해 “넣을까요?”를 표현했다. VLIVE·유튜브 화면 캡처
네이버 VLIVE ‘BTS’ 채널에서 멤버 진의 얼굴을 활용해 자막 “우와”(왼쪽 사진)를 표현한 장면.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비책’ 채널도 그의 얼굴을 활용해 “넣을까요?”를 표현했다. VLIVE·유튜브 화면 캡처
“자막 보려고 구독해요.” “자막이 제 취저(취향저격)입니다.”

유튜브에서 자막이 새 생명을 얻었다. 출연자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화면 하단에 옮겨 적거나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던 자막은 인터넷에서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됐다. 문법이나 글자 형태를 파괴, 해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의 얼굴을 활용하는 등 변화 양상을 보인다. 일부 지상파, 케이블 채널도 영향을 받아 유튜브 자막문법을 이용한 유머코드를 썼다. 수많은 채널이 경쟁하면서 자막이 혁신 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출연자의 얼굴을 활용한 자막이다. 출연자의 대사나 감탄사, 속마음 등을 설명할 때 얼굴 모양을 활용하는 형태다. 주로 동그란 머리 모양이나 입 모양을 자음 ‘ㅇ’ 또는 ‘ㅎ’으로 활용한다. 구독자가 288만 명에 달하는 인기 유튜브 채널 ‘백종원의 요리비책’에는 최근 백종원의 얼굴을 활용한 자막 장면이 화제가 됐다. “넣을까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자막 ‘을’ 속 ‘ㅇ’을 그의 얼굴로 활용한 자막을 넣어 웃음을 줬다. 방탄소년단(BTS)의 얼굴도 자막 유머코드에 활용됐다. 팔로어가 1500만 명에 이르는 네이버의 ‘VLIVE’ BTS 채널에서는 멤버 진이 “우와”라고 감탄하는 장면이나 “아침 9:00”시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그의 머리, 코 등 신체 부위가 활용됐다.

화면 하단 혹은 해당 출연자 바로 옆이던 자막의 위치도 변화했다. 인물 얼굴을 뒤덮어버리는 자막은 물론이고 몸짓, 발짓을 따라 자막이 움직인다. 심지어 화면 밖으로 날아가는 물체 옆에도 움직이는 자막이 사용된다. ‘하승진’ 유튜브 채널에서는 웃음 포인트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를 화면 전체에 뒤덮는 편집도 사용됐으며, 하승진의 동작에 따라 움직이는 자막이 활용됐다.

한글 표기나 문법에서도 유튜브 채널은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출연자의 발음이 부정확하더라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 웃음을 준다. 한글과 영어 알파벳을 섞은 표기도 쓰인다. 감탄사 ‘Aㅏ’ 또는 한글 ‘혹시’ 대신 ‘HOXY’ 등을 쓰는 것이 용례다. GOD 멤버 박준형의 ‘와썹맨’, ‘하승진’ 채널 등에서 활용이 많다. 한 유튜브 채널 편집자는 “이전엔 자막의 디자인, 형태에 신경을 썼다면 최근에는 영상과 연관성을 갖추면서도 자막 자체에 ‘애드리브’나 ‘개그’를 넣는 것을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지상파, 케이블 채널에서도 자막의 변화가 감지된다. MBC나 tvN 채널에서도 유튜브식 자막문법을 활용하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 PD는 “유튜브보다 시청층이 넓다 보니 정신없이 들어가는 유튜브식 자막을 그대로 쓰긴 어려우나 이를 참고해 전보다 자막 양을 늘리고, 크기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한 종편방송 PD 역시 “유튜브에서 일어난 자막 혁신이 방송 편집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자막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맞춤법 외에 아직까지 자막의 형태, 활용에 대한 논란은 적은 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부수적 역할에 그치던 자막이 컴퓨터그래픽(CG) 기술과 맞물려 유희성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자막 양도 늘어날 것”이라며 “다만 자막의 남발로 프로그램의 깊이까지 떨어뜨리는 수준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얼굴 자막#백종원의 요리비책#방송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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