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의 패션[간호섭의 패션 談談]〈27〉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코미디언, 가수, 배우 등의 직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지요. 문명의 발달과 함께 그 범위와 파급력은 커져 갔지만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무대에 오를 때면 두꺼운 메이크업에 과장된 헤어스타일 그리고 화려한 의상을 입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노래, 무용, 연기 등 특기를 연마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의상에도 공을 들입니다. 대중은 즐거움을 주는 그들의 이면에 이러한 수고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몸이 아파도, 불행한 상황에 처해도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나 한 명의 개인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은 이처럼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조커(Joker)’ 또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조커란 말 그대로 농담을 하는 사람이고 카드놀이에서 본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익살스러운 분장을 한 광대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암울한 고담시에서 사회 안전망으로부터 소외된 약자죠. 영화는 조커가 웃음을 주는 광대가 아닌 공포의 광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조커가 입은 녹색 셔츠와 노란 조끼 그리고 빨간 정장은 저승사자의 ‘올 블랙’ 패션보다 더 무서워 보입니다.

같은 광대라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1954년 영화 ‘길(La Strada)’의 여주인공 젤소미나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차력사 잠파노에게 팔려온 그녀는 지능이 낮은 천진난만한 광대죠. 천막과 황량한 모래판이 무대의 전부지만 그녀의 북 연주와 율동에 늘 사람들이 모입니다. 의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짧은 금발에 얹은 작은 페도라 모자, 사이즈가 커도 한참 큰 군복 같은 코트에 안에 입은 줄무늬 셔츠가 전부입니다. 주변에서 급조한 옷들이죠. 유랑극단의 삶이 얼마나 궁핍한지. 다시 길을 떠나는 젤소미나에게 삶은 힘든 여정일 뿐임을 패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젤소미나는 새로 떠나는 길마다 토마토 씨를 뿌립니다. 솔직히 한 곳에 정착해 토마토를 가꾸고 수확하지 않는 이상 씨를 뿌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격언처럼 허름한 무대의상을 입는 젤소미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무언가 변화를 원할 때 화려한 옷을 입어보거나 큼지막한 무늬를 선택해 심리적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립스틱 색상을 바꿔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넥타이를 매어 보기도 하죠. 좋은 시도입니다. 차를 바꾸거나 이사를 가는 것보다는 쉽고 돈도 적게 드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화려한 의상을 입어도 내 마음이 어둡다면 소용없습니다. 그보단 내 맘속에 토마토 씨를 심는다면 어떨까요.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은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조커의 화려한 패션은 보고 또 봐도 조커의 처지만큼이나 서글프고 무서워 보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조커#광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