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강하늘이 3040 누나들에 인기 있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6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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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하지 않더라도 다음 대본을 볼 수 있을까요?”

영화 ‘도어락’ 촬영에 한창이던 지난해 초. KBS ‘동백꽃 필 무렵’ 대본을 읽은 공효진은 차영훈 PD의 출연 제의를 고사했다. 그에겐 올 3월까지 ‘뺑반’, ‘가장 보통의 연애’ 등 빡빡한 영화 촬영 일정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SBS ‘질투의 화신’(2016년) 이후 드라마가 없었고 “남 주긴 아까운 대본”이라며 무척 아쉬워했다. 제작진은 그런 그를 반 년 넘게 기다리기로 했다. 임상춘 작가가 대본을 쓸 때부터 동백이는 공 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보통 출연 동기를 묻는 질문에 배우들이 으레 “대본이 좋아서”라고 답한다. 그런데 ‘동백꽃…’ 대본은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군복무 중 이 드라마 대본을 접한 배우 강하늘도 “흔히 볼 수 없는 드라마였다”며 반했다. 해외촬영이나 컴퓨터그래픽(CG)으로 치장한 화려한 볼거리나 극을 이끄는 사악한 악역도 없는데. 첫 회 시청률 6.3%(닐슨코리아)으로 출발하더니, 10일 14.5%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동백꽃…’의 서사는 여러모로 임 작가의 전작들을 빼닮았다. “옆집 뚝배기 개수까지 아는” 좁은 마을 옹산에서 동백은 술집을 운영한다. 고아 출신 미혼모이자 외지인인 탓에 동네 터줏대감들의 질시를 받는 동백은, 18년 만에 섬으로 돌아와 마을사람들과 갈등하는 KBS ‘백희가 돌아왔다’(2016년)의 미혼모 백희(강예원)가 겹쳐진다. 갈등과 화해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을 담으면서도 곳곳에 연쇄살인마 까불이에 대한 섬뜩한 ‘떡밥’들을 끼워 넣어 극의 긴장감도 놓지 않았다.

“동백 씨도 화풀이 할 사람 한 사람은 필요하죠? 기냥요. 강남에서 뺨 맞으면요, 저한테 기냥 확 똥 싸요!”

“이 남자는 돌직구도 아니고 투포환 급이다”는 동백의 독백처럼, 자존감이 낮은 그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추켜 세워주는 용식은 사랑엔 어수룩하나 우직하고 일편단심인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스물’(2014년) ‘청년경찰’(2017년)에서 봐온 강하늘의 익숙한 이미지다. 특히 동백의 말에 일희일비하며 투박한 언어로 구애하는 용식의 모습은 유독 30~40대 ‘누나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누나들은 강하늘에게 ‘멍뭉미’(강아지를 뜻하는 멍뭉이와 미·美의 합성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강하늘에게 열광한다. 하명선 씨(46·여)는 “현실적이면서 판타지 같은 드라마다. 요즘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저런 남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개두요, 제일로 귀여운 거는 똥개에요” “동백 씨는 그릇이 대자여 대자” 등 특정 소재를 비유하며 내뱉는 짧은 대사의 말맛도 시골 소시민들의 삶에 잘 어우러진다. ‘흙수저’ 청년의 현실과 연대를 담은 KBS ‘쌈 마이웨이’(2017년)처럼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여전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약자의 처지를 뒤집어 판타지를 선사하는 대신, 투박하면서 처지에 맞는 위로와 희망을 주기에 더욱 공감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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