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육격차 더 벌릴 ‘가짜 고교 평준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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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청이 2025년도부터 자율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자사고와 특목고의 설립 근거 조항을 삭제해 고교평준화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통한 단계적 폐지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려 사실상 실패하자 교육부가 일괄 폐지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진보 교육 진영과 교육 당국은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하면 고교 서열화가 해소되고 공교육이 정상화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념에 경도된 억지에 가깝다. 자사고·특목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강남8학군과 명문고가 부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수월성 교육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입시 성적이 좋은 이른바 명문고에 배정받을 수 있는 학군으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고교 서열화가 사라지기는커녕 부모의 재력에 따라 명문고 진학이 결정되는 ‘가짜 평준화’를 원하는 것인가.

자사고·특목고의 우수학생 선점 효과가 사라지면 일반고에 생기가 돌고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주장도 무책임하다. 일반고의 붕괴는 학생 탓이 아니다. 교육과정과 교사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는 개혁은 한사코 마다하면서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만 봉쇄하려 한다. 이렇게 형식적인 평등만 추구하다가는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놓치게 될 것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과 맞물려 자사고·특목고가 폐지되면 기존 고교체계 및 대학입시는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다. 이런 폭발력이 큰 정책을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주체의 의견 수렴 없이, 교육개혁 방향에 대한 설득 없이 비공개 밀실 협의로 추진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당정청이 ‘조국 사태’의 해법으로 공정성 운운하며 엉뚱하게 자사고·특목고 폐지에 매달리는 것은 대중의 평등심리에 편승한 정략적 발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교 평준화#교육격차#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자사고 재지정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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