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 3개월만 버텨도 ‘100일 잔치’…병원 떠나고 싶은 이유 1위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4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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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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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병원에서 자궁절제술을 받고 입원 중인 김모 씨(60). 의사 얼굴 보기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간호사마저 그럴 줄 몰랐다. 당뇨가 있어 저혈당이 걱정돼 간호사가 자주 김 씨 상태를 체크해야 하지만 만나기가 어렵다. 그나마 잠깐 나타나는 간호사에게 수술 경과나 치료 일정을 묻지만 대답은 “잠깐만요”다. 김 씨는 “간호사들을 보면 딸 같은 마음에 이해해야지 싶다가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씨의 사례는 전국의 많은 병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다. 14일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올해 간호사국가시험 합격자를 포함해 전국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20만7315명. 전체 간호사 면허 취득자 41만5532명의 49.9%다. 간호사 절반은 쉬거나 다른 일을 하는 셈이다. 동아일보는 간호사가 왜 병원을 떠나는지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3회 시리즈를 연재한다.

●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


간호협회가 이달 1~7일 간호 면허를 딴 지 1년 이내인 간호사 1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근무하는 병원에서 1년 안에 그만두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응답이 67.4%나 됐다. 떠나고 싶은 이유로는 과중한 업무량(19.0%), 낮은 임금(16.4%),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과도한 야간근무(15.7%) 등을 꼽았다.

응답자 중 1년이 채 안 돼 병원을 옮긴 간호사는 42.4%였다. 이직 사유 역시 과중한 업무량(21.7%), 직장문화(19.8%), 불규칙한 근무시간·야간근무(15.6%), 낮은 임금(13.4%) 순으로 비슷했다. 2016년 병원간호사회의 실태조사 때 ‘1년 이내 이직률’은 35.3%였다.

한국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간호사 1명이 평균 16.3명의 환자를 돌본다. 중소병원은 43.6명이나 된다. 미국(5.7명) 스웨덴(5.4명) 노르웨이(3.7명) 등과 비교하면 중노동이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간호사 1명당 환자 2.5명을 배치해야 하지만 유명무실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2년차 간호사 K 씨는 3교대 근무로 식사와 배변이 불규칙해 방광염과 변비를 번갈아 앓는다. 나이트 근무 때는 오후 9시 반에 출근해 이튿날 오전 8시 30분에 끝난다. 그러나 5시간도 못 자고 그날 오후 2시 반부터 오후 10시 반까지 이브닝 근무할 때도 많다. 인수인계하느라 근무시간을 훌쩍 넘겨도 초과수당은 없다. K 씨는 “신입 간호사들에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고 한다”고 탄식했다.

업무량은 과중한데 비해 임금은 박하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간호사 평균 연봉은 상급종합병원 3286만 원, 종합병원 2748만 원, 중소병원은 2506만 원이다. 같은 4년차 대졸 대기업 초임에 뒤처진다. 환자 30~40명을 책임지며 밤샘 야근도 잦은 중소병원 간호사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하다.

김영경 부산가톨릭대 간호대학장은 “과중한 업무량은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는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 간호사 평균연령 28.7세로 연소화

현장을 이처럼 많이 떠나다 보니 베테랑 간호사는 점점 줄어든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병원 간호사 평균 연령은 28.7세다. 전체 활동 간호사의 76.4%가 20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간호사는 평균 6.2년 일한다. 평균 근속기간 18.1년인 미국의 절반도 안 된다.

간호사들은 대형병원이 젊고 튼튼한 간호사를 더 선호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규 간호사가 몇 달을 버티지 못하는 일이 많아서다. 대형병원에 들어간 간호사가 3개월을 버티면 이를 축하하는 ‘100일 잔치’가 있을 정도다.

서울의 대형병원 3년차 간호사 S 씨는 “1년차 미만 간호사가 중환자실 간호 인력의 60%라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중소병원 2년차 간호사 P 씨는 “‘잘못하다가는 나 때문에 환자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탁영란 한양대 간호학부장은 “환자 회복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간호사가 현장을 떠나면 환자 안전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며 “경험 있는 간호사가 포기하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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