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머리 남자의 슬픈 미소[이은화의 미술시간]〈80〉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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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쥔, 무제, 2005년.
웨민쥔, 무제, 2005년.
민머리의 남자들이 활짝 웃고 있다. 초현실적인 핑크색 몸은 발가벗었고, 머리에는 종이로 된 생일파티 모자를 쓰고 있다. 과할 정도로 크게 벌린 입안은 완전히 까매서 하얀 치아들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인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고 뭐 때문에 이리 크게 웃고 있는 걸까?

중국 작가 웨민쥔(岳敏君)의 그림 속엔 이렇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과장되게 웃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이들은 모두 민머리인 작가 자신을 닮았다. 소학교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었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석유공장에 배치돼 고된 노동생활을 했고, 뒤늦게 들어간 미술대학을 졸업하던 해엔 톈안먼 사태가 일어났다. 정치·경제적으로 혼돈과 격변의 시대를 직접 겪었던 그는 자신이 느끼는 절망의 감정과 사회비판적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깊은 고민 끝에 선택한 주제는 스스로를 비웃는 자화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구현되고,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를 원한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당시 중국사회는 이 모든 것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 세계였다. 완전 절망 상태에서 개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오는 것이 헛웃음이고 자조다. 그는 사회나 다른 사람을 비웃는 대신 바보 같고 무기력한 스스로를 비웃기로 했다. 또한 자화상은 검열과 압박을 피하기 위한 영리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림 속 화가의 복제된 자아들은 세상사에 눈을 감고 바보처럼 웃고 있다. 웃고 있는데도 슬퍼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했다. 이들은 곧 내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나아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화가는 이렇게 자화상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비틀며 냉소를 던진다. 그런데 배경에는 사랑과 자유를 상징하는 거위들을 그려 넣었다. 하늘을 나는 거위들은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없는 희망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염원일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웨민쥔#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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