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희망 안고… 14년 만에 돌아온 ‘블랙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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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블랙홀’은 “검정 가죽 옷에 악기 멘 사진은 지겹다. 신작의 미래 콘셉트에 맞게 깔끔한 정장을 입어 봤다”고 했다. 왼쪽부터 정병희(베이스기타), 주상균(보컬, 기타),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 블랙홀 제공
그룹 ‘블랙홀’은 “검정 가죽 옷에 악기 멘 사진은 지겹다. 신작의 미래 콘셉트에 맞게 깔끔한 정장을 입어 봤다”고 했다. 왼쪽부터 정병희(베이스기타), 주상균(보컬, 기타),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 블랙홀 제공
“인공지능(AI)이 특이점에 도달한 미래 사회를 상상한 뒤 그 관점에서 신작의 전곡을 만들었습니다.”(주상균·보컬, 기타)

한국 헤비메탈의 산 역사, 4인조 그룹 ‘블랙홀’이 무려 14년 만에 새 정규앨범을 냈다. 앨범 제목은 ‘Evolution(진화)’. 1985년 결성해 1989년 1집을 냈으니 올해가 데뷔 30주년이다. 1집엔 메탈 발라드 명곡 ‘깊은 밤의 서정곡’이 담겼다. 낭만적 세레나데 같지만 숨죽인 민주화 열망을 담은 노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만난 블랙홀 멤버들은 “현실 이야기는 30년간 할 만큼 했다고 본다. 신작에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앨범에 담긴 10곡 가운데 첫 곡 ‘AI’를 비롯해 ‘LOG IN’ ‘LOVBOT’ 같은 제목만 훑어도 공상과학(SF) 분위기가 넘실댄다.

“소설과 영화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보통 디스토피아로 보죠. 하지만 다수의 힘이 좋은 쪽으로 뭉친다면 AI 역시 우리를 돕는 존재로 길들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주상균)

‘Big Brother와 Sky net 아닌 Bicentennial Man…’이라 노래하는 ‘AI’의 후렴구에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나 영화 ‘터미네이터’ 대신 가사 도우미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을 상상했다.

블랙홀은 귀곡성처럼 한 서린 단조 선율로 30년간 한국적 메탈을 대표했다. 평단의 극찬을 받은 전작 ‘Hero’(2005년)에는 국악기도 도입했다. 신작은 선입견을 깨부순다. 거의 모든 곡이 밝은 장조. 퀸처럼 화사한 보컬 화성으로 분출하는 후렴 선율은 요즘 케이팝만큼 명징하다. 메탈의 질주감과 팝의 청량감을 배합했다.

이원재(기타)와 정병희(베이스기타)는 “VST(가상 스튜디오 기술)를 활용해 기타 소리를 컴퓨터로 처리했다. 1000분의 1초라도 어긋나면 다시 연주했다”고 했다.

“최신 음악을 공부했어요. 팝가수 케이티 페리의 노래에 나오는 힘찬 드럼 사운드는 헤비메탈을 압도해 버리죠.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 뒤지지 않는 소리를 만들었다 자부합니다.”

30년간 가장 짜릿했던 순간을 묻자 올 5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오프닝 무대를 꼽았다. 5·18민주화운동 때 장애를 입은 대학원 동기를 보며 주상균이 만든 ‘마지막 일기’를 연주했다.

“옛 전남도청을 등지고 연주하는데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차올랐습니다.”(이관욱·드럼)

멤버들은 “마니아 장르를 고집하다 보니 30년 중 절반은 위기 상태였다”고도 했다.

“1993년 3집을 낸 뒤 한 공연에는 관객 두 명이 왔어요. 물론 2만 명이라 여기고 2시간 동안 15곡을 연주하고 앙코르까지 했지만요.”(주상균)

블랙홀은 12월 14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스물한 살, 스무 살이 된 제 두 아들이 블랙홀을 좋아하는 것이 큰 힘입니다. AI의 시대엔 인간미 넘치는 음악이 생존할 겁니다. 저희처럼요.”(주상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블랙홀#ai#헤비메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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