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논란에 신물이 난다[안영식의 스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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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링링이 휘몰아친 7일 KG·이데일리 레이디스오픈 2라운드 경기 중 박결(오른쪽)과 그의 캐디가 강풍에 심하게 휘어진 깃대를 바라보며 난감해 하고 있다. KLPGA 제공
태풍 링링이 휘몰아친 7일 KG·이데일리 레이디스오픈 2라운드 경기 중 박결(오른쪽)과 그의 캐디가 강풍에 심하게 휘어진 깃대를 바라보며 난감해 하고 있다. KLPGA 제공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골프는 대표적인 실외 스포츠다. 날씨가 변수다. 티오프 타임에 따라 어떤 선수는 우비에 우산까지 써가며 고생해야 한다. 반면 다른 선수는 그날 비 한 방울 안 맞고 라운드를 마치기도 한다. 하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날씨는 골프 선수가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기에 그렇다.

만약 절반의 선수는 하루 종일 강풍 속에서, 나머지 절반은 다음 날 바람 한 점 없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동일한 라운드를 치르게 했다면 불공정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결과로 우승자를 가렸다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추석 직전에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G·이데일리 레이디스오픈이 그랬다.

이 대회는 태풍 링링이 수도권을 강타한 7일 2라운드를 강행한 것이 화근이었다. 안전 안내 문자(야외 활동 중단, 외출 자제)를 무시한 채 선수들을 강풍 속으로 내몰았고 결국 출전 선수의 절반인 63명이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 예고된 태풍의 경로와 이동 속도, 위력을 감안하면 7일 경기는 애초 취소하는 게 마땅했다. 일기예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요행을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도 현명하게 수습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판단 착오는 계속됐고 급기야 ‘불공정한 마무리’로 이어졌다. 8일 태풍이 완전히 빠져나간 평온한 코스에서 2라운드의 거의 대부분을 치른 선수들의 타수와 전날 태풍이 휘몰아치는 악조건 속에서 이미 2라운드를 마친 선수들의 타수를 동등하게 비교해 최종 순위를 결정한 것이다.

더군다나 8일 치러진 경기의 핀 위치는 태풍의 영향을 고려한 전날의 평이한 그 지점 그대로였다. 2라운드 잔여 홀을 치르는 것이 최종 라운드가 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 선수들에게선 “오늘 같은 날씨에 그 핀 위치면 5, 6언더파는 거뜬히 칠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상 악화로 라운드가 취소되는 건 다반사다. 올해도 이번 대회에 앞서 2개 대회(에쓰오일 챔피언십, 삼다수 마스터스)가 54홀에서 36홀 경기로 축소됐다. 그땐 괜찮았는데 이번엔 왜 원성을 샀을까. 매우 불공정했기 때문이다.

KLPGA는 앞선 2개 대회의 각각 1라운드와 최종 3라운드를 취소할 때 “오늘 라운드를 진행할 경우 악천후로 모든 선수가 경기를 종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라운드를 취소한다”고 그 사유를 밝혔다.

그런데 이번 대회와 관련한 KLPGA의 변명은 옹색하다. “날씨가 나쁘면 공정성과 형평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게 골프다. 대회조직위는 주어진 일정 안에 대회를 마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엔 공정함이 외면당했다. 대회 운영 원칙이 오락가락이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 여자프로골프를 이끌고 있다는 KLPGA의 현주소다.

스포츠가 온전히 존립하려면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래야 그 종목이 발전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이 심판을 보고 채점하는 종목은 특히 그렇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판정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21일 개막하는 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에서부터 비디오 판독 요청 횟수를 늘리기로 했다. 지난 시즌 전체의 비디오 판독 결과를 살펴보니 오심이 42%나 됐기 때문이다.

날씨가 최대 변수인 골프대회의 찜찜한 승부를 예방하기 위해선 예비일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그런데 갤러리 참관 등 흥행에 유리한 수도권 골프장을 대회 코스로 빌리는 게 힘겨운 상황에서 월요일까지 예비일로 잡아 놓기는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게 대회를 운영해야 한다. 7월에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에비앙 챔피언십은 악천후가 예보된 3, 4라운드를 당초 예정보다 2시간 일찍 시작했고 컷을 통과한 72명의 선수를 인-아웃코스로 나눠 동시에 출발시켜 무난히 대회를 마쳤다. 고진영의 시즌 메이저 2승째는 그렇게 나왔다.

우승자조차 “이번 우승은 행운인 게 맞다”고 소감을 밝힌 건 공정한 대회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출전 선수는 물론이고 팬들도 수긍하지 못하는 대회 운영은 곤란하다. 선수에겐 직권남용이고, 거액의 상금을 내놓은 타이틀 스폰서엔 배임이다. 한 달 넘게 들었더니 공정성이라는 단어에 신물이 난다. 스포츠만큼은 국민들의 갑갑한 가슴을 뚫어줬으면 좋겠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골프#klpga#공정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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