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몰라봤다… 시곗줄의 진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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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현의 워치앤톡(Watch&Talk)

다양한 스타일의 스트랩이 적용된 파네라이 제품들. 똑같은 디자인의 제품도 시곗줄의 색깔, 소재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시곗줄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커지면서 업계가 케이스(본체)만큼이나 공을 들이고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스트랩이 적용된 파네라이 제품들. 똑같은 디자인의 제품도 시곗줄의 색깔, 소재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시곗줄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커지면서 업계가 케이스(본체)만큼이나 공을 들이고 있다.
인간과 시계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기 시작한 건 탁자 위 시계가 손목에 올려지면서부터다. 필요할 때만 꺼내 보는 주머니 속 회중시계와 달리 손목시계는 바깥에서 주인과 함께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봤다. 나만 보는 것에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물건’이 되면서 시계의 얼굴에는 화려한 치장이 더해졌다. 한낱 생활도구에 불과했던 시계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모두 손목시계 덕분이다.

스트랩, 시계의 진화를 이끌다

손목시계의 탄생은 돈벌이 목적이 아닌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친구의 우정에서 비롯됐다. 브라질 출신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은 “비행 중 시계를 꺼내보는 게 큰 불편”이라고 친구에게 털어놨다. 흘러들을 법한 사소한 고민거리였지만 그의 죽마고우이자 파리 유명 보석상 아들이었던 루이 까르띠에는 고민에 빠졌다. 친구의 불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까르띠에는 1904년 시계 제조업자 에드먼드 예거의 도움을 받아 스트랩으로 시계를 고정한 손목시계를 만들어 선물했다. 시계 케이스(본체)와 스트랩을 이어주는 러그가 처음 쓰인 것도 이때부터다.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로 알려진 까르띠에 ‘산토스 뒤몽’. 양산형 모델로 1912년 판매된 제품이다.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로 알려진 까르띠에 ‘산토스 뒤몽’. 양산형 모델로 1912년 판매된 제품이다.
이렇게 탄생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는 친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의 이름을 따 ‘산토스’가 됐다. 앞서 19세기 후반 귀부인들이 끈으로 고정한 팔찌 형태의 시계를 손목에 차기는 했지만 장신구에 불과했다. 파텍필립, 브레게 등 ‘최초의 손목시계’ 자리를 둘러싸고 이견이 많지만 양산형으로 제작돼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는 점에서 ‘산토스’를 최초의 손목시계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주연급 조연이 된 시곗줄

시계를 손목 위로 올려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시킨 건 명실상부 ‘스트랩’의 공(功)이다. 시계 케이스를 손목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스트랩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시계를 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보통 금속 시곗줄을 ‘브레이슬릿’이라고 부르고 그 밖은 ‘스트랩’으로 통칭한다. 시계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무 소재의 ‘러버 밴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스트랩은 소가죽이나 악어가죽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고가의 고급시계일수록 희소성이 있는 악어가죽을 활용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시곗줄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이다. 스트랩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계 장인의 정성 들인 손바느질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케이스와 다이얼(전면)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았던 시곗줄은 요즘 뒤늦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시계가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시곗줄의 소재와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일명 ‘줄질’로 불리는 시곗줄 교체는 시계 마니아들에게는 취미생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똑같은 케이스라도 어떤 시곗줄을 장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기 때문에 하나의 시계로 마치 여러 개의 시계를 차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줄질’은 계절적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금속 소재의 브레이슬릿이나 러버 밴드의 판매량이 높고 가을, 겨울에는 가죽 스트랩이 인기를 끈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스트랩 종류가 많고 호환이 쉬운 파네라이의 경우 줄질이 그 어떤 브랜드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수십만 원을 넘나드는 스트랩 가격이다. 소재, 색상, 차는 방식에 따라 670여 가지 스트랩을 판매하고 있는 파네라이는 스트랩 지출 비용이 워낙 커 마니아들 사이에서 ‘파산라이’로 불리기도 한다.

시곗줄 숨은 매력 찾기

시곗줄이 본체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다. 로저드뷔가 2017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컬렉션’은 출시 당시 다이얼(전면) 디자인보다 스트랩이 더 많은 시선을 받았다. 세계적인 타이어 제조사 피렐리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제작된 이 제품의 스트랩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 시계의 스트랩은 포뮬러원(F1)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한 차량의 타이어 조각을 활용해 제작됐다.

브라이틀링이 최근 선보인 ‘슈퍼오션 헤리티지Ⅱ크로노그래프44 아우터노운’도 본체보다 스트랩이 더 주목을 받았다. 이 제품은 전 세계 바다에서 수거한 어망 등 나일론 폐기물을 특수 처리해 스트랩을 완성했다. 실제 시계를 차보면 스트랩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다. 브라이틀링은 친환경적 소재를 활용한 제품들을 앞으로 계속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올림픽 타임키퍼로 잘 알려진 오메가의 국기 모양 스트랩은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선 매번 화제다.

한 귀로 흘려들은 사소한 말, 별것 아닌 장면 속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숨어 있을 때가 있다. 서너 번 등장한 조연의 표정과 대사가 온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영화도 있다. 매일 눈길을 주며 애지중지 아꼈던 케이스와 다이얼 대신 오늘은 러그와 스트랩의 모양새를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자. 무심코 지나쳤던 ‘조연’들의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을 테니.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스타일 매거진 q#명품#손목시계#스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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