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피했지만… 사업 서둘다 남긴 불씨에 ‘발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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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국내 최대 ‘10조 재건축’ 반포주공1단지에 무슨 일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2017년 12월 급하게 관리처분계획 신청까지 끝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최근 법원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받아 조합은 10월로 예정된 이주 일정을 연기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2017년 12월 급하게 관리처분계획 신청까지 끝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최근 법원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받아 조합은 10월로 예정된 이주 일정을 연기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사업비 10조 원 규모로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의 사업이 주춤거리고 있다.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은 23일 “우리 조합의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부득이하게 10월로 예정된 이주를 잠정 연기한다”며 “즉각 항소에 나설 예정이고, 2심 판결이 나온 뒤 이주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반포주공1단지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시행을 불과 나흘 앞둔 2017년 12월 27일 서울 서초구청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해 가까스로 환수제 대상에서 빠진 곳이다. 조합원당 수억 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면제받고, 5층 이하의 2120채이던 단지가 최고 35층의 5338채로 재탄생하는 강남권 최고 수익성을 갖춘 재건축 사업장으로 평가됐다. 건설사들의 치열한 수주 경쟁을 바탕으로 명품 마감재, 스카이브리지 등 특화 설계가 가득한 조건을 시공사로부터 얻어내며 명품 아파트 단지로 재탄생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안종화)는 반포주공1단지 조합원 267명이 조합을 상대로 낸 ‘관리처분계획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 “2017년 12월 26일 임시총회에서 의결한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조합원들 간에 합의에 실패하고 이후 소송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면 반포주공1단지는 판결대로 관리처분계획부터 다시 신청해야 한다. 이 경우엔 초과이익환수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 초과이익환수 피하기 위해 사업 진행 서둘러

발단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정부는 6·13대책과 8·2대책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초과이익환수제를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속도전이 시작됐다. 2017년 12월 31일까지 해당 구청에 관리처분계획을 신청한 단지까지만 환수제를 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포주공1단지 조합은 서초구청으로부터 2017년 9월 27일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0월 13일부터 조합원 분양을 실시했다.

반포주공1단지 조합은 그해 11월 분양을 마치고, 한 달여 후인 12월 26일 임시총회를 열어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했다. 다음 날인 27일 서울 서초구청에 조합원 분양 3538채, 일반분양 1566채(보류지 20채, 임대분양분 211채) 등으로 구성된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하면서 환수제를 극적으로 비켜 갔다. 보통 1년이 걸리는 과정을 3개월 만에 끝낸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분란의 싹이 텄다. 조합원 분양 당시 조합 측은 집 한 채를 더 주는 ‘1+1 분양’을 제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평형 배분 문제가 불거졌다. 전용면적 107m² 조합원들은 ‘59m²+115m²’까지만 가능하다고 조합으로부터 공지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에게는 ‘59m²+135m²’ 분양 신청을 허용해주면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2018년 1월 조합원 267명은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조합 측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상 1+1 분양은 기존 자산의 감정평가액 이하로만 신청이 가능한데 107m² 조합원이 만약 로열층으로 구성된 59m²+135m²를 받게 되면 평가액을 초과해 1순위 자격이 취소될 수 있다”며 “조합원들에게 이 같은 위험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지 말라고 공지한 것이고, 이를 무시한 조합원의 신청까진 막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해당 조합원이 위험으로 감수해야 할 사항일 뿐 분양 신청 자체를 전면적으로 불허하는 것은 조합원의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일부 조합원들에게는 59m²+135m²를 허용한 것도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법원의 판결 이후 조합은 당장 10월로 예정된 이주를 포함한 사업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 등 재판이 최소 1년 이상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주를 한 상태에서 재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

이로 인해 일찌감치 인근 지역에 전세 계약을 진행한 일부 조합원들은 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처해 있다. 인근 지역인 반포리체 아파트의 한 중개사는 “이달 초 계약을 진행한 반포주공1단지 조합원이 있는데 이주가 무산되면서 당장 계약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임대인과 협의가 잘되지 않으면 계약금을 물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 단지의 전용면적 84m²는 전세 시세가 11억∼12억 원 수준이라 계약금만 1억 원이 넘는다.

2017년 관리처분계획 당시부터 대형 평형 조합원들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전용면적 205m²의 대형 평형 조합원들은 “중형인 105m²에 비해 대형의 감정평가가 지나치게 낮게 나왔다”며 조합이 진행한 감정평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올해 3월 제기하기도 했다. 한 조합원은 “조합장을 포함해 2120채 가운데 60%가 넘는 1320채가 105m² 조합원이다 보니 아무래도 소형 평수가 감정평가나 조망권 등에서 유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 환수제 적용은 모두가 피하고 싶은 상황


이번 판결 이후 세간의 관심은 반포주공1단지에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되는지 여부다. 1심 판결이 대법원까지 유지된다면 관리처분계획을 다시 수립해 관할구청에 신청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2018년 1월 1일 이후 신청한 단지는 모두 환수제 대상이다. 따라서 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조합 집행부와 소송에 참여한 조합원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소송에 참여한 한 조합원은 “가구당 평균 4억 원, 최대 10억 원 가까이 부담해야 하는 환수제 대상에 포함되길 원하는 조합원은 아무도 없다”며 “대법 판결까지 기다린다면 사업이 언제 시작될지도 모르고, 환수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22일 조합장에게 무리한 소송을 이어가지 말고 합의를 하자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소송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기존 조합의 설계안이 아니라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최신 설계안을 바탕으로 한 관리처분계획 변경과 이주 진행 전 조합원 재분양 과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향훈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는 “합의를 이루게 된다면 기존에 인가된 관리처분계획을 변경해 환수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 측은 공식적으로 합의에 나설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박설용 사무국장은 “22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즉각 항소를 위한 변호사 선임 절차 등을 논의했다”며 “1심 결과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판결이라 2심에서 뒤집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법원에서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환수제는 비켜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손한수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는 “관리처분계획의 단초가 되는 총회의 결의가 이번 판결로 없어지게 됐기 때문에 관리처분계획을 새로 만들 총회부터 열어야 하므로 환수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다른 소송도 많아 사업 더뎌질 수도

일부 조합원들은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될 당시 약속한 특화 설계와 이주비 지원 방안 등이 본계약에서는 사라졌다며 ‘시공사 선정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단지 안 관리사무소, 노인정, 테니스장 등 2만687m²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로 등기돼 있어 이를 둘러싼 토지 반환 소송도 진행 중이다.


조합 집행부의 의사결정에 불만을 제기하는 300여 명의 조합원은 올해 5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격인 발전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애초 조합은 10월 이주 후 1년이면 착공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각종 소송 결과와 건축심의 등을 고려하면 이주 후에 착공이 요원해질 수도 있다”며 “전문적인 분석 없이 호언장담만 하니 불안하고 답답한 노릇”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주장에 조합 측은 “모든 의사결정은 전문가 자문을 거친 후 대의원회, 이사회, 총회 등 합의를 거쳐 진행하지 집행부가 독단으로 정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며 “조합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 사업 일정을 지연시키는 것밖에 안 되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포주공1단지 사태를 예측하기 힘든 우리나라 주택정책과 비전문적인 조합 운영 관행이 빚어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면 조합에서도 꼼꼼하게 준비했겠지만 급하게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려고 서두르다 보니 이 같은 혼란이 발생한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에는 또 다른 제도인 분양가상한제의 시행이 예정돼 있어 이로 인해 혼란을 겪는 단지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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