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최고전문가 이원덕 “日이 가장 당혹해할 해법… 식민지배 불법성 규탄 후 배상 포기 선언”

  • 신동아
  • 입력 2019년 8월 18일 0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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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판결 후 8개월 정부 無策이 日 경제보복 방아쇠
● 분노 조절 실패한 아베 군단이 기습 작전하듯 벌인 조치
● 배상 청구권 포기한 중국 방식으로 물질-정신 분리하는 게 이기는 게임
● 우리가 돈이 없어 피해자 구제 못 하는 게 아냐
● 국제사법재판소 가는 것도 해결의 한 방법
● 이대로 방치하면 경제전쟁 촉발하는 최악 상황으로 질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의병(義兵)’이니 ‘제2독립운동’이니 하면서 말로만 정신승리할 게 아니라 맥락과 원인을 살펴야 해법이 나온다. 말로 욕하는 건 쉬우나 쇼비니즘적 선동은 이성의 눈을 가린다. 진단이 옳아야 적확한 처방을 내놓을 수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한일협정 관련해 국내 최고 권위자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일본의 전후 처리 외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은 현재 벌어지는 대결의 원점(原點)이다. 그는 1951~1965년 진행된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의 방대한 외교 문서를 모두 읽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징용·징병 피해자 보상을 위한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다. 8월 7일 그를 만나 한일 갈등의 맥락과 원인을 살피고 해법을 모색했다.

- 한일관계가 악화한 건 2012년부터다. 누적된 긴장이 폭발한 것인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방아쇠 구실을 한 건가.

“한일관계가 누더기가 돼버렸다. 일본이 단행한 보복의 방아쇠는 대법원의 징용 판결과 그것에 대한 정부의 무책(無策·방안이나 꾀가 없음)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8개월간 사실상 방치하다 6월 19일이 돼서야 한국·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을 일본에 제시했다. 일본은 너무 늦고 미흡했다고 본 것 같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압력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 경제 보복이다. 징용 재판에 대한 정부의 무책이 시발점이고 배경에 누적된 갈등이 있다.”

- 지난해 11월 한국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해산 방침을 발표했으며 해산 등기 절차는 7월 3일 마무리됐다. 위안부 합의 파기와 징용 배상 문제의 무게는 어떻게 다른가.

“징용 배상 사안이 훨씬 크다. 국내에 투자된 일본 기업 자산이 압류돼 있다. 일본은 자국 기업의 자산이 한국의 국내법에 의해 강제 집행·몰수되고 있다고 본다. 위안부 합의 파기는 추상적 성격이 있는 반면, 징용 배상은 구체적 문제다. 물론 화해·치유재단의 일방적 해산도 모티프는 됐다.”

“분노 조절에 실패한 아베의 무리수”

- 2015년 위안부 합의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위안부 합의는 아베가 가진 역사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압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아베가 한국과 타협하고자 일본의 우익을 눌렀다. 자기 소신과 다른 결단을 내리면서 한국과 타협을 택한 것이다. 그 사람 처지에선 일본 내 반발을 무릅쓰고 굉장히 어려운 결심을 했다. 합의가 이뤄진 후 문제가 종결되기는커녕 한국에서 반발이 더욱 커졌다. 앞으로 잘해보자고 한 건데 일방적으로 파기당하면서 아베가 일본 우익한테 조롱거리가 됐다. 자존심이라고 할까. 개인적 분노 조절 장치가 무너지는 부분이 생긴 거다. 멘털로만 보면 위안부 합의 파기도 아베에게 영향을 줬으나 자국 기업 자산 압류가 진행되는 게 경제 보복에 나선 이유다.”

-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 분업 구조를 송두리째 흔들면서 이웃 나라를 겁박하는 것은 문명국이 할 짓이 아니다. 아베의 행태는 저열하게 느껴지는 데다 촌스럽기까지 하다. 자국 기업에도 피해를 주면서 경제 보복에 나설 일인가. 일본은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 분업 구조에 올라타 수출로 일어선 나라다.

“일본이 선을 넘었다고 본다. 본인들은 보복이 아니라는데, 그 말은 보복이 나쁘다는 걸 안다는 거다. 굉장히 무리하고 어처구니없는 부당한 조치를 내렸다. 일본은 정경분리 원칙을 잘 지켜온 나라다. 70년 넘게 역사나 정치 문제로 경제에 악영향 주는 정책을 취한 적이 없다. 일본 내에서 보기에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제적으로도 일본은 신뢰로 먹고사는 나라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은 자유무역이나 동등한 무역 정책을 통해 혜택(benefit)을 받아왔다.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이 이뤄지는 질서 속에서 최대 이익을 누린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태평양전쟁(1941~1945)에 돌입한 것도 미국의 금수조치에 대항한 것이었다. 그런 나라가 잘 지켜오던 규범을 깨고 무리수를 던졌다. 아베가 분노 조절에 실패했다는 느낌이 든다.”

- 내각이 아닌 총리 관저 중심으로 보복을 결정했다고 보는 건가.

“일본 관료 전체가 이러한 보복에 컨센서스를 갖고 동의한다고 보지 않는다. 정책 서클은 물론이고 언론들조차 보복 조치가 적절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만난 오피니언 리더들도 아베가 왜 지는 게임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보복 조치를 내릴 때 내각 각 성·청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된 게 아니다. 기습 작전하듯 이뤄졌다.”

“아프게 할 100개 아이템 골라”

- 내각의 의견을 모아 신중하게 결정한 게 아니다?

“총리실에서 올봄부터 각 성·청에 요청해 한국을 아프게 할 이른바 대항 조치를 체계적으로 모았다. 100가지 아이템을 골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칙을 내세웠다고 한다. 한일 간 인적 교류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국제 규범을 위반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것, 그러면서도 한국이 아파할 것을 뽑을 것.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직접 공격하는 조치다. 아베 측근 마피아들의 의견이 주로 반영된 것으로 안다. 보복안이 나올 때까지 고노 다로 외무상은 몰랐다고 한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이마이 다카야 정무비서관 등 마피아적인 아베 군단이 주도한 것이다. 듣기로는 아베의 외교 책사인 아치 쇼타로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상도 수출규제 조치에 저항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성·청 관료들의 일치된 인식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점도 대응책을 짤 때 감안해야 한다.”

- 일본 다수 여론은 아베의 행태를 지지하는 모습이다.

“한국이 한번 맺은 약속이나 협약을 자꾸 깨기에 일정한 대항 조치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본 내에 퍼져 있다. 민족적 혹은 국민적 차원의 지지는 있는 것 같으나 이렇듯 무도한 방식의 무역 보복을 일본 국민이 지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일본 국내 정치가 아베 1강이다. 그래서 비판이나 대항이 대놓고 표면화하지는 않으나 내부적으로 불만이 굉장히 많다. 특히 일본 산업계에서 도대체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일이냐, 당장 우리에게 피해가 오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 평화헌법 개정이나 총리 4연임 포석은 아닐까.

“일본의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효과는 있을 것 같으나 대(對)한국 정책이 일본 국내에 주는 임팩트가 그렇게 크지 않다. 일본 국내 정치용으로 한국을 희생양 삼았다는 건 너무나 거대한 음모론적 해석이다. 그런 측면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게 동기라고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 아베는 한국에 1965년 한일협정을 파기하려 하느냐고 묻는 듯하다.

“이른바 ‘65년 체제’는 미국의 냉전 전략 일환으로 구축됐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한일협정이 체결됐다고 봐야 한다. 더 거창하게 얘기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질서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연장선상에서 한일기본조약이 맺어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일협정은 냉전 구도에서 한일 간 경제협력을 극대화하고 안보적 차원에서 결속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데, 안보와 경제 사안을 65년 체제에 안착시키다 보니 아무래도 과거사 및 역사 청산이나 해결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이다. 이 조약에 의거해 설계된 국제 질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도 한다.

전후 세계 질서와 65년 체제

- 미국은 6·25전쟁 때부터 한일협정 체결을 원했다.

“14년간 한일 회담 과정을 보면 미국은 두 나라를 결속시키고자 직·간접적으로 굉장히 애를 썼다.”

- 1965년 한일협정을 매국적 합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에 역사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뤘으면 현재 시점에서 보기에 만족스러운 합의가 도출됐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65년 체제는 흠결이 없지 않으나 한국은 일본에 비해 압도적 약소국이었다. 1960년대 한국의 국력은 일본의 30분의 1 미만이었다고 봐야 한다. 1965년의 대한민국은 외교력이나 경제력에서 일본과 비교가 안 되는 상황에서 역사전쟁을 벌인 것이다. 과거사를 청산하라고 요구하면서 경제적인 보상도 얻어내야 했고 안보적으로도 협력해야 하는 3대 과제를 갖고 있었다. 1965년 합의를 깎아내리기만 하는 것은 1950~60년대 한국 경제나 동북아 국제관계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결여돼서다. 지금도 역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협상하면 합의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54년 전엔 오죽했겠나. 결기나 결의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힘의 관계나 국제 여건에서 당시 중요한 것은 일본과 경제협력을 통해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남북 체제 경쟁에서 한국이 우위에 서려면 미국 일본과 안보 및 경제 협력을 해야 했다. 한일협정 체결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

- 65년 체제에 올라탐으로써 번영의 길을 걸었다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 와서 당시에 역사 문제를 왜 소홀하게 다뤘느냐고 묻는 것은 몰(沒)역사적 이해다.”

역전된 논리 구사하는 아이러니

한일 간 현안인 징용 배상 논란의 핵심은 청구권협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청구권협정은 19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의 부속 협정이다. 청구권협정 제1조에서 일본은 한국에 10년 동안 3억 달러를 무상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주기로 했다. 제2조에서 “양국 및 그 국민(법인 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제1조와 제2조를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조항이 없다. 배상이라는 낱말도 명시돼 있지 않다. 일본은 대가 없이 돈을 주고 한국은 대가 없이 청구권을 없앤 격인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가 배상이 아니라고 보면서 국내법과 국제조약이 충돌하게 됐다.

- 1조와 2조는 어떻게 연결되나.

“청구권협정이 한일 간 여러 문제의 발화점이다. 1조, 2조의 논리적 연결고리가 굉장히 약하다. 일본도 이 대목에서 논리적으로 굉장히 취약하다. 청구권협정을 마무리한 후 양국 정부가 자국 의회에 경과를 밝혔는데 한국 정부는 식민지 문제에 대한 사죄의 대가로 받은 것이라고 국회에 설명했다. 사실상 보상·배상의 성격이라고 본 것이다. 일본 정부는 경제 협력과 원조, 독립 축하 의미로 자금을 제공했다는 취지로 의회에 보고했다. 지금과 정반대다. 현재 일본은 보상이 당시에 끝났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보상은 끝났을지 몰라도 배상은 남았다고 본다. 양국이 완전히 역전된 논리를 구사하는 건 아이러니다.”

- 필리핀 같은 나라는 전승국으로서 배상받았으나 한국은 전승국 지위를 얻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제14조국으로 분류됐다. 배상받을 권리를 가진, 말하자면 연합국으로 분류됐다. 이들 나라는 양자회담을 통해 청구권협정이 아닌 배상협정을 체결했다.”

-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한국과 대만은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으로 간주됐다.

“식민지로 본 거다.”

- 어처구니없게도 일본이 셋(일본, 한국, 대만)으로 분리됐다는 인식이 미국에 지금도 남아 있더라(이와 관련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미국에도(그런 인식이) 남아 있고, 일본에서도 법적으로 그런 생각이 강하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이 식민 지배했고, 중국은 일본이 침략했다는 것이다. 필리핀 등의 나라는 점령한 것으로 본다. 법적인 이해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우리 국민들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이 문제를 다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한일관계를 식민지-탈식민지 관계로 봤지, 일본과 전쟁했다고 보지 않았다.”

65년 체제 파기·청산은 어떤가

- 그렇다면 범여권 일각의 주장대로 이번 일을 계기로 65년 체제를 파기·청산해버리고 리셋하는 것은 어떤가.

“목표 개념으로는 그런 주장이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조약이나 협정은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일본이 새로운 협정을 수용할 가능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65년 체제가 잘못됐기에 파기하자는 주장은 틀렸다고 본다. 65년 체제는 박물관에서 박제(剝製)된 게 아니다. 무라야먀 담화를 비롯해 일본이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하면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나오는 등 진화해왔다. 도의적으로 사과는 하되 배상은 못 한다는 게 일본의 견해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지만 부당했다는 점은 인정하는 것이다. 65년 체제를 파기한 후 일본이 불법성과 배상을 인정하는 형태로 새로운 조약을 맺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65년 체제를 파기하면 대혼란에 빠진다. 당시 받은 돈을 되돌려줘야 하고 수교한 것까지 파기하는 결과가 된다. 북·일 수교가 이뤄질 때 65년 체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본다. 65년 체제는 54년 전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 북·일 협정에는 변화한 역사 인식이 담길 것이다. 북·일이 합의한 새로운 역사 인식을 한일 간에도 담는 형태로 선언이나 협정을 맺는 것은 검토해볼 수 있다.”

-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65년 체제에서 탈각하려고 한다고 본다.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듯하다. 조국 씨는 법학자의 눈으로 보는 것 같다.”

- 현재 상황에서 단교까지 각오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배상하라고 끝까지 몰아붙이면 어떻게 될까.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북한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수교를 안 맺으면서 불법을 주장하는 것인데,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다.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효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 일본 처지에서는 한국과 징용 배상 관련 갈등이 북한과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겠다.

“그렇다. 일본이 한국에 양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 한 대로 북한에도 똑같이 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와 전후 처리를 했다.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동남아 4개국과 다른 나라에는 배상 및 준배상을 했다. 중국으로부터는 배상 포기 선언을 받았다.”

중국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에서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한국과 대만은 재산 청구권의 틀로 처리했고, 연합국으로부터는 배상 포기 선언을 받아냈다. 일본의 전후 처리 외교에서 아직도 마무리가 안 된 게 북한과 러시아다. 북한과 수교하지 않았으며 이른바 북방 영토(쿠릴열도) 문제 등으로 러시아와 강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한국과 징용 배상 문제에서 구멍이 뚫리면 전후 처리 외교 전체의 둑이 무너진다고 여기는 부분도 일본이 양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 대법원-일본 최고재판소 법리 다툼

일본 정부가 8월 7일 한국을 백색국가(수출관리 우대조치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개정 시행령(정령)에 공포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관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뉴시스]
일본 정부가 8월 7일 한국을 백색국가(수출관리 우대조치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개정 시행령(정령)에 공포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관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뉴시스]
- 현재까지 경제 보복은 주먹을 들고 간을 보는 수준이다. 보복 조치가 점차 가시화·본격화할까.

“이번 조치의 성격이 뭐냐를 정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아베의 일당이 기습 작전하듯 내놓은 것인데 3개 품목 수출규제 강화와 백색국가 제외는 수도꼭지를 생각하면 된다. 수도꼭지의 물을 잠근 게 아니라 잠글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재량권이 이쪽에 있으니 그쪽에서 해법을 내라는 게 현재 상황이다. 금수 조치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무역 제한 조치에 발동을 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 국제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일본 국내의 평가가 어떠하냐 등 복합적 문제와 연관돼 있다. 일본이 금수 조치를 내렸다고 단정하고 국난 상황으로 규정할 단계가 아니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한 백색국가였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원래부터 백색국가가 아닌데 금수 조치를 인식하고 살지 않는다. 일본은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는 건널 수 있다. 우리 법원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압류한 재산을 현금화하는 강제 집행을 완료하는 게 판도라 상자를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국내법에 따르면 현금화해야 한다.

“정치적 사안이기도 하다. 법적 집행 과정을 기술적으로 미룰 수도 있다. 내년 1월 정도까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인 것 같은데, 그사이 여러 가지 방안을 전략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 아베는 “한국이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주장하더라.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태가 지속된다는 주장인데 그건 오버다. 한국의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 전혀 아니다. 양국 간 청구권협정 해석상 이견이 발생했을 뿐이다. 협정의 해석을 두고 법적, 법리적 충돌이 생긴 것으로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툴 사안이다. 아베와 일본 정부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아니라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면 어떻게 할 건가. 양국이 청구권협정을 비슷하게 해석하다가 이제와 A와 B로 갈라진 것이다. 누가 잘못인지는 법리적으로 다툴 사안이지 어느 일방이 위반한 게 아니다.”

- 법리적으로는 개인의 권리를 국가 간 합의로 뭉갤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한국 대법원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봤다. 법리적으로 그게 맞는 해석이라고 본다. 일본 최고재판소와 외무성도 그건 인정한다.”

- 개인 청구권은 있으나 외교적 보호권(국가가 자국민이 타국에 의해 위법한 침해를 받은 경우 그 구제를 해당 타국에 요구하는 권리)은 없다는 게 일본의 논리다.

“외교적 보호권이 없을뿐더러 그 권리는 법정에서 소송으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소멸됐다는 게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의 의견이 갈린다. 누가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툴 사안이다.”

“일본 내 한국 자산 동결로도 이어질 수 있어”

5월 20일 일본이 청구권협정 3조에 따라 양국 간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는데 한국이 거절했다. 청구권협정은 청구권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선 외교 경로로 해결하고(3조 1항), 안 되면 양국 간 중재위를 구성하며(3조 2항), 한 국가가 거부할 경우 3국을 통한 중재위(3조3항)를 구성하는 것으로 돼 있다. 6월 19일에는 한국이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일본이 거부했다.

- 일본은 한국이 청구권협정 3조를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조는 1970년대까지 국제조약을 맺을 때 관행처럼 들어간 것이다. 양자 조약을 체결할 때 분쟁 시 해결 방법과 관련해 중재위를 넣는 게 일종의 트렌드였다.”

- 조약이나 협정에 의례적으로 넣는 것이었다?

“중재위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당시에 있었는데 그게 왜 작동이 안 됐느냐면 국제사법재판소라는 국제기구가 그 역할을 맡게 돼서다. 더 공신력 있는 기구가 생기면서 중재위는 아주 낡은 방식이 됐다. 청구권협정에 중재위 방식으로 해결한다고 돼 있으니 일본이 주장하는 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요구 자체는 정당한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응하지 않은 게 부당한 것도 아니다.”

- 응하지 않는 것도 대응 방법의 하나겠다.

“그렇다.”

징용 배상 문제에서 비롯한 일본과의 갈등을 푸는 방법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방치다. 압류 자산을 현금화한 후 일본을 규탄하며 대결 국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 정부가 제안한 기금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는 일본이 제안한 중재위를 받거나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것이다.

“방치는 최악의 상황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경제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수출규제에 덧붙여 비자 심사 강화, 송금 제한, 일본 내 한국 자산 동결 등 보복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기금 조성에 의한 외교적 해법

- 정부가 제안한 한국·일본 기업이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일본을 계속 압박하면 어떨까.

“일본이 1+1안을 즉각 거부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등은 2+1안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한국 정부+기업과 일본 기업이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들어가는 게 옳다고 본다. 포스코 등 청구권 자금을 받은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만 들어가는 구도는 너무나도 불안정하다. 포스코가 얼마를 낼지 누가 보증하나? 일본 기업은 기금에 얼마를 출연해야 하나? 공신력 있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 2+1로 합의가 이뤄지면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왜 한국(정부+기업)이 일본 기업과 함께 배상하느냐는 여론이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다.

“그건 흑백논리다. 외교적으로 지혜롭게 풀어야 한다. 우리 대법원의 정의도 정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의 정의도 일본의 관할권 내에서는 정의다. 정의와 정의가 충돌하는 양상이므로 외교적 해법을 구하는 것이다. 기금안이 해결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단, 기금안은 현실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거칠게 말해 징용 배상은 위안부 문제와는 폭탄의 크기가 다르다. 도대체 몇 명에게 위자료를 줘야 하는지 확정하기도 어렵다. 법원에 계류 중인 피해자는 14건 900명인데,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1만 명의 징용 피해자가 존재한다. 7만2000명에게는 피해자 지원법에 따라 2007년 금전을 지급했다. 특별법을 제정하면 2007년 지원과 중복된다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징용 피해자들이 기금 방식의 해법에 동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 일본 기업과 한국·일본 정부(1+2), 한국·일본 기업과 한국·일본 정부(2+2) 기금안도 거론된다.

“기금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이 논의된다면 일본 정부는 기금에 안 들어간다고 할 것이다. 일본 기업도 못 들어간다는 것을 억지로 잡아다 세우는 시늉을 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네 죄는 네가 알고 반성하는 삶을 살라

그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다. 양국 최고 사법기관이 정반대 판결을 내렸으므로 전쟁을 하지 않는 한 평화적 해결은 제3자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재판에 지면 한국의 타격이 크다는 우려가 있는데 피해자 구제와 관련한 사안이지 국가 명운을 건 싸움이 아니다. 우리가 이기면 일본 기업이 배상하는 것이고 지면 배상 문제는 그것으로 종결된다. 4년 안팎의 재판 과정에서 협상 시간을 벌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양국이 타협에 도달할 수도 있다. 부분 승소, 부분 패소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 기금안과 사법적 해결 방법 외에 또 다른 해법은 없을까.

“한국 정부가 특단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중국 방식이 그것이다. 식민 지배 불법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일본에 사죄와 반성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물질적 요구는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방식이다. 피해자 구제는 국내적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일본을 규탄하는 것이다. 이 방안이 가장 멋있는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베와 일본 정부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방법이다. 도덕적으로 승리하는 외교이기도 하다.
우리는 받아야겠다는 데 저쪽은 못 주겠다고 한다. 거칠게 보면 둘 중 하나다. 역사전쟁을 걸어 때려잡아 받아내던가, 국제법적으로 받아내던가. 지금 한국은 말로만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가 돈이 없어 피해자 구제를 못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네 죄는 네가 알고 반성하는 삶을 살라’고 훈계한 후 우리가 구제하는 것이다. 물질과 정신을 분리해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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