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주가 본 日製 불매운동 “삼각김밥도 불매? 죽창가로 해결될 일 없다”

  • 신동아
  • 입력 2019년 8월 17일 20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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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비스연맹마트산업노동조합이 7월 24일 서울역 롯데마트 앞에서 주최한 
마트노동자 일본제품 안내 거부 퍼포먼스.  [뉴시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마트산업노동조합이 7월 24일 서울역 롯데마트 앞에서 주최한 마트노동자 일본제품 안내 거부 퍼포먼스. [뉴시스]
일본 편의점에 대한 에세이를 쓰겠다고 지난해부터 수차례 일본을 오가고 있다. 고작 편의점 하나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여행 경비를 대주는 것도 아닌데 상당한 비용을 들여 편의점 연구에 매달린 것은 왕성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편의점 에세이를 내고 이왕 작가라는 이름을 얻게 된 김에 편의점의 모든 것을 알리겠다는 나 나름의 의무감이랄까, 편의점 ‘끝판왕’이 되고 싶었다. 일본은 자타 공인 ‘편의점 원조 국가’ 아닌가.

그렇게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건네, 올가을쯤 책이 나올 예정이었다. 일정은 겨울로 미뤄졌다. 겨울에는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으려나. 꽃피는 봄이 와야 볕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극도로 경색된 한일관계와 드높은 반일 감정 때문이다. 출간이 연기된 것은 조금도 섭섭하지 않다. 개인적 손해가 역사적 사건에 비할 수 있겠나. 생업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견줘 내 티끌만 한 손실이 비교조차 될 수 있을까. 원고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은 아니니 그저 조용히 기다릴 따름이다.

일본은 느리다

친구들이 묻는다. 작금의 사태가 어찌 될 것 같으냐고. 평양 한번 들렀다고 북한 좀 아는 양 우쭐대는 사람들의 세상이라지만 일본 몇 번 오간 주제에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다만 내가 일본에 대해 ‘보고 느낀’ 몇 가지 사례를 넌지시 들려준다. 일본을 잠깐이라도 겪어본 사람들은 다들 아는 내용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드나드는 일본 편의점이 하나 있다. 그곳에 처음 갔던 날, 출입문 근처 도로에 작업 헬멧 쓴 사람들이 측량 작업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큰 공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가게 앞에서 어수선한 문제가 있다는 건 가게 주인 입장에선 절대 가벼이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같은 자영업자 처지에서 주인장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주인장 왈, “어쩔 수 있겠습니까.” 가볍게 웃는다. 도로를 확장하고 차제에 각종 배관 공사까지 하는 것 같단다. 주인장의 마지막 말이 의아했다. “아마 몇 달은 걸릴 거예요.”

몇 달? 도로는 기껏 왕복 4차선이고, 그중 한 차선만 건드리는 공사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으나 한국 같으면 며칠 새 후닥닥 해치울 규모다. 결과를 말하자면 그 공사는 필자가 마지막으로 일본을 찾은 올해 6월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수없이 측량하고, 살피고, 뜯어보고, 정리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답답할 지경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불평 한마디 없다.

지금 한국의 우리 집 앞은 공사가 한창이다. 편도 2차선이던 도로를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다. 연말까지는 하겠구나 예상했는데, 웬걸, 한 달 만에 후닥닥 아스팔트까지 깔아버렸다. 곧 끝날 기세다. 역시 한국은 빠르다. 일본은 느리다. 느린 정도가 아니라 답답해 가슴을 치는 일이 많다. 한국에서는 오늘 전화하면 내일 설치되는 인터넷도 일본은 1주일이나 보름, 때로 한 달까지 걸린다. 일본은 버스도 느리고 택시도 느리고 행정 절차도 느리다. 건축 허가 하나를 받으려 해도 몇 개 부서를 들락거려야 하고, 승인 도장 받고도 담당 공무원이 줄자 들고 찾아와 꼭 재보고 확인한다. ‘자기 일’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고루하고 깐깐한 사람들이다. 반면 ‘타인의 사정’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설명의 민족

고교 시절 나는 화학을 어려워했다. 어느 날 서점에서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화학이 좋아지는 책’. 책을 읽고, 은사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왜 이렇게 쉽게 가르쳐주시지 않는 걸까 살짝 원망했다. 요즘도 서점에 가보면 특정한 주제를 쉽게 설명하거나 간결하게 요약한 책을 볼 수 있는데, 저자를 살펴보면 일본인인 경우가 흔하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도 일본 작가가 쓴 책이다. 실용서뿐 아니라 에세이나 소설 같은 문학 분야에서도 일본 작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대체로 문장이 간결하고 가독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무언가를 설명하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기어이 당신에게 설명해버리고야 말겠다, 이것을 이해시켜버리고야 말겠다는 어떤 집착마저 갖고 있는 것 같다.

편의점을 연구하며 일본을 오갈 때 종이팩에 든 청주를 선물 받은 적 있다. 술을 마시면서 용기를 보니 한쪽에 설계도면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종이와 플라스틱 마개 부위를 분리하는 요령, 종이를 넓게 펼쳐 배출하는 방법 등이 세세히 담겨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일본이다.

북한 인권 관련 비영리기구(NGO)에서 일하던 시절, 일본 기자들의 집요함은 여러 번 나를 놀라게 했다. 한번은 북한의 집결소(체포돼 송환된 탈북자들을 주소지 관할 사법기관으로 이송하기 전 임시 구금하는 시설) 동영상을 입수해 국내외 언론에 배포한 적 있는데, 어느 일본 기자가 집결소 내부 구조는 물론 건물 높이, 지붕 재료, 창틀 모양, 건물에서 철조망 거리까지 지겨울 정도로 속속들이 묻는다. 다음 날 방송을 봤더니 관련 내용을 3D 입체 영상으로 만들어 설명하며 보도하고 있었다.

씻지 못할 패악질

7월 29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일본 맥주가 진열돼 있다. [뉴스1]
7월 29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일본 맥주가 진열돼 있다. [뉴스1]
2008년 금융위기 때 필자는 중국에 있었다. 위성으로 한국 뉴스를 보니 평가절상이 어떻고 절하가 어떻고 통화스와프는 어떻고, 온갖 어려운 말을 빠르게 쏟아내고 있었다. 한국 언론의 경제 뉴스는 간혹 외계어를 해석하는 기분이다. 그러다 문득 채널을 돌렸는데 일본 공영 NHK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남녀 앵커가 달러와 엔화 모형을 들고 나와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 아닌가. 환율이 얼마일 때는 이 정도 주면 됐는데, 환율이 이렇게 되니까 달러가 이 정도 필요해졌고, 그것을 엔화로 바꾸니 이렇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 화면만 보고도 환율의 상승 하락에 따라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표현해도 그리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자극적인 뉴스로 가득 찬 한국 방송을 보다가 일본에서 TV를 보면 저렇게 뉴스거리가 없나, 한심하단 생각마저 들 정도다. 올해 5월 일본의 어린이집 원생들이 교사 인솔 아래 인근을 산책하던 중 돌진한 차량에 치여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방송은 뉴스 시간 절반가량을 할애해 그 사건을 거의 외울 정도로 보도하고 또 보도한다. 2월에는 영화배우가 술집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헤드라인 뉴스로 다루면서 자세히 보도한다.(그 사건의 가해자는 한국인 3세였다. NHK는 한국 이름까지 병기하며 유독 그 사실을 강조했다. “일본 사회의 비릿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면서 일본의 지인들은 혀를 끌끌 찼다.) 물론 두 사건 모두 안타깝고 끔찍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어쩌면 단신 정도로 처리할 사건을 일본인들은 해부하듯 파헤치며 다룬다. 일본 방송을 보고 있으면 일본은 내부적으로 대단히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아닌가, 그러니 저런 뉴스들을 주요하게 다루지, 하는 생각마저 슬슬 고개를 든다.

일본인은 집요하다. 집요하면서 친절하다. 그러면서 조심스럽다. 알다시피 일본인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거의 죄악으로 여긴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들면 부모가 굉장히 엄하게 꾸짖는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섬뜩할 정도로 딱 소리가 나도록 아이들의 머리나 따귀를 때리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어디든 조용하다. 공원이든 지하철이든, 심지어 술집이나 오락실까지, 모두가 조용히 말하고 조심히 행동한다. 그런 나라가 20세기 세계 여러 나라에 ‘폐’를 끼친 정도가 아니라 기억에 씻지 못할 패악질을 해댔으니 어쩌면 그것은 어리둥절한 일이다. 지금 일본인들의 상냥한 미소에서 일본도(刀) 들고 ‘머리 많이 베기 경연’을 벌이는 일본군의 모습을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일본군은 바로 오늘 일본인의 부모들이고, 언제든 다시 그럴 수 있는 기질을 내재하고 있다고 피해국 국민들은 불신을 떨치지 못한다.

自害 행위

혹자는 말한다. “지금 일본의 행동은 전혀 일본답지 않다”고. 맞는 말이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설명을 잘하는 일본의 태도에 맞지 않는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면서도 왜 그러는 것인지 이유와 근거조차 적시하지 않은 것은 청주 종이팩 분리 방법까지 그림으로 설명하는 일본인의 평소 태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작금의 사태를 일본의 자해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일본의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를 통해 ‘우리도 화났다’ 혹은 ‘화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남는 것이 무엇일까? ‘한국이 무릎 꿇고 잘못했다 빌 것’이라 예상하는 걸까? 다른 국가들이 ‘일본을 건드려서는 큰일 나겠구나’ 뜨끔할 것이라 기대하는 걸까?

혹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회에 한일관계의 이런저런 문제를 대외에 부각해 일본의 정당성을 알리는 계기로 삼겠다.’ ‘국제무대에서 하나하나 따지면서 확인을 받겠다.’ 어쩌면 그것이 ‘설명의 민족’다운 일부 일본인의 계산법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대단히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싸움이 진흙탕이 되면 제3자는 시시비비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진다. 지금 상황이 딱 그렇지 않은가. ‘한국이 잘못했네’ 하면서 일방적으로 국제 여론이 쏠린다든지, ‘일본이 그럴 만하다’고 끄덕끄덕 머리를 흔들며 동의해준다든지, 사태가 그렇게 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국제관계의 많은 일은 대체로 양시론 양비론으로 흐른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외교적 해결법이고, 일단 외형상 도발한 쪽을 흘겨보게 된다.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자꾸 뒤집는다’고 하소연하겠지만, 애초에 이 싸움은 일본이 잃는 것이 많은 싸움이다.

그럼 일본 걱정(?)은 이 정도로 해주고 우리는 어떨까? 전 세계가 ‘한국인들은 건드려서는 안 되겠구나’ ‘건드리면 똘똘 뭉쳐 싸우는구나’ 그런 인식을 똑똑히 심어주는 계기가 될까? 그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 한국인은 개별 자의식은 낮은 반면 민족적 자의식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우리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여긴다. 물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대단한 국가를 만들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고 단 30~40년 만에 세계 꼴지권 국가를 최상위권 국가로 끌어올린 사례는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런 국가를 만들어낸 주역인 한민족은 스스로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하다. 그러는 한편으로 우리는 외부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높아진 ‘격’에 맞추어 우리는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고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역시 한국!?

일본 편의점 ‘삼각김밥’. [AP=뉴시스]
일본 편의점 ‘삼각김밥’. [AP=뉴시스]
외부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대체로 ‘똑똑하다’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고, 일하는 속도도 빠르다. 열정 있고 도전의식이 높다. 그러나 모든 긍정은 부정을 내포하게 마련인데, 그러는 한편으로 한국인은 다혈질로 비친다. 쉽게 화를 낸다. 어쩌면 충동적이다.

지금 우리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외부에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역시 한국!’ 하는 인상도 있겠지만, 어쩌면 좀 소란스러운 사람들이라는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남이야 그러든 말든 우리끼리 만족하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거칠고 단순하지 않다. 특히 국가나 민족의 이미지라는 것은 작은 경험과 사건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형상을 이루며,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이미지는 화석처럼 굳어 쉬이 바뀌지 않는다. 이번 불매운동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중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많으나 ‘이건 좀 지나친데’ 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실시간 소통하는 세상에서는 상당히 조심할 일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요즈음 편의점 주인으로서 필자는 삼각김밥 불매운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소심한 걱정이 생겼다. 사람들은 삼각김밥이 우리의 전통(?) 김밥이 변형된 것이라 흔히 짐작하지만 편의점 삼각김밥이야말로 대표적인 일본 발명품이다. 일단 주먹밥을 삼각형으로 만들고 거기에 김을 씌우는 형태가 일본의 오니기리(おにぎり)에서 유래했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팔아보자는 발상, 그런 삼각김밥을 자동으로 만드는 기계, 모두가 일본에서 비롯됐다. 발명가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을 정도다.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사실 편의점이라는 업종 자체도 일본에서 형태가 잡혀 한국으로 건너왔다. 초창기 한국 편의점은 거의 대부분 일본과 합작 형태로 만들어졌고, 최근까지도 일본 지분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업체가 많았다. 일본인 편의점 전문가들이 한국에 상주하며 여러 가지 기술적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삼각김밥도 그런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삼각김밥 포장지는 1970년대 일본에서 발명돼 진화를 거듭했다. 오늘날과 같이 삼각형 한 꼭짓점에서 절취선을 따라 양쪽으로 포장을 쪼개내는 방식은 1980년대 중반 개발됐는데, 우리는 그런 시트지를 만들 줄 몰라 초기에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거나 기술 로열티를 주고 생산했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자체 생산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편이 저렴하고 품질도 좋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20년 동안 가격이 거의 변하지 않은 삼각김밥을 오늘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밥을 조리해 삼각형으로 성형하는 기계, 김을 시트지에 자동으로 넣어주는 기계, 시트지를 밥에 포장하는 기계, 포장된 삼각김밥을 다시 가지런하게 눌러주는 기계, 김가루를 정리하는 기계, 불량품을 걸러주는 기계…. 삼각김밥 하나를 만드는 데도 이렇게 많은 기계가 필요한데 대부분 일본산이다. 기술특허권도 상당수 일본이 갖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삼각김밥 불매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하는 걸까?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업체뿐 아니라 일본 업체까지 괴롭게 만들고 나아가 국제 분업 체계를 뒤흔드는 반(反)세계화, 반(反)시장적 행위라는 사실을 우익 정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난폭한 자해 행위라면, 우리의 대응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 생활에 부속품처럼 함께 작동하는 일본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어쩌면 우리도 ‘맞불’ 자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본을 겨눈 칼날이 의도하지 않게 적잖은 한국인 - 우리 부모형제들 - 의 목을 겨누는 부메랑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사실도 한 번쯤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본 도로엔 유턴이 없다”

어느 일본 친구가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멋있게 느끼는 장면이 있다고 했다. “주인공이 자동차를 운전하다 넓은 도로에서 터프하게 유턴하는 장면이 정말로 멋있다”면서 선망의 눈빛을 반짝인다. ‘별걸 다 부러워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본의 도로에는 유턴이 없다. 유턴이 금지된 곳이 많기도 하고, 도로에 유턴 표시 자체가 없다. 스스로 알아서 유턴하면 되는데, 일본인들은 대체로 유턴하지 않는다. P턴을 하거나 뱅글뱅글 돌아 제자리에 닿는다. 그런 일본인의 시각에서 빠르게 유턴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시원스럽고 박력 있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문화, 의식, 습관의 차이를 보여주는 작은 단면이다.

일본 편의점에 대한 책을 쓰려고 일본을 오가는 동안 일본인들의 친절과 배려에 여러 번 감격하고 감사했다. 정치인들의 헛발질과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다정하게 교류하고 있다. 나는 작금의 사태가 일본인의 평균적인 시각을 반영한 행위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치에 거의 관심 없는 일본인이 70%가량 내각 결정을 지지하는 것은 쉬이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은 쌓기 쉬워도 잃어버린 정을 되찾는 데에는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 정성이 필요한 법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한일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 아닌 이상, 유턴은 못 하더라도 P턴을 통해서라도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한국 정치인들도 그런 방향에서 노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죽창가’로 해결될 일이란 없다. 한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일개 점주의 작은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닿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이 기사는 신동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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