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사일 폭발 공포[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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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쪽 러시아 북부에 백해(白海·White Sea)라는 내해(內海)가 있다. 백해 연안에는 세베로드빈스크라는 도시가 있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13일 러시아 군이 실험 중이던 신형 미사일 엔진이 폭발했다. 방사능 수치가 일시적으로 평소의 16배까지 올라갔지만 러시아 정부는 방사능 유출을 부인했다. 폭발 현장 인근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라는 권고를 들었지만 왜 떠나라는 건지 이유는 듣지 못했다.

▷이런 괴이한 상황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에서는 드물지 않다. 2000년 핵추진 잠수함 쿠르스크의 침몰로 탑승자 118명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도움을 주겠다는 영국 해군의 제안을 거절하고 유족을 대상으로 선원 전원이 생존해 있다는 등의 거짓 브리핑으로 일관했다. 지난달만 해도 스파이 활동을 하던 최첨단 핵추진 잠수함에서 가스 폭발 사고로 14명의 승무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러시아 정부는 여전히 심해 탐사 잠수정이 폭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폐는 독재의 뒷면이다.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세르게이 스크리팔 등 망명한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들은 독극물 살해를 당하고, 푸틴의 정적인 보리스 베레좁스키와 측근의 자살은 의문사로 남아 있다. 안나 폴릿콥스카야 같은 비판적 언론인도 암살을 당했다. 올 5월에는 반(反)푸틴 언론인 아르카디 밥첸코가 암살을 모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경찰과 협조해 살해당한 것으로 가장했다가 다시 등장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푸틴은 이 모든 것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최근에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방문해 ‘밤의 늑대들’이라는 바이크 동호회의 건장한 회원들과 함께 바이크를 타며 실효적 지배를 과시했다. 웃통을 벗고 말을 타고 총으로 호랑이를 잡는가 하면 투명유리의 심해 잠수정을 직접 운전하며 바다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21세기 차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 세계에 뿌린다.

▷이번 사고는 낮은 고도로 날아 대륙을 건너가는 ‘9M730 미사일’의 시제품과 관련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푸틴이 ‘지구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고 자랑한 이 신무기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더 진전된 비슷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맞받았다. 최근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의 파기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 새로운 군비 경쟁에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 하늘에서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고 ‘제2의 체르노빌’이 언급되는 상황이 불행한 사태의 전조가 아니었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러시아 백해#블라디미르 푸틴#21세기 차르#제2의 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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