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영업 하게 된 佛쇼핑가… 쇼핑몰도 규제하려는 한국 [광화문에서/염희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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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차장
염희진 산업2부 차장
프랑스 파리의 프랭탕백화점 꼭대기층에는 식품관과 식당가가 있다. 최근 만난 이 백화점의 홍보 담당자는 파리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 꼭대기층의 야외 식당으로 안내했다. “파리 식재료를 파는 백화점에서 파리 시내 전망을 보며 프랑스 음식을 먹는 것만큼 좋은 관광자원은 없습니다. 앞으로 백화점이 갖는 경쟁력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이 백화점의 야외 식당은 파리를 찾는 관광객 사이에서 숨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쇼핑가가 몰려 있는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에서도 이색적인 관광 명소를 찾을 수 있었다. 황금빛 돔 지붕으로 덮여 있는 백화점 내부에 들어서자 여기가 오페라극장인지 백화점인지 헷갈렸다. 백화점은 이 돔 장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4층에 투명 유리다리(글라스워크)와 별도 포토존을 마련했다. 이곳은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길게 줄을 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중무휴로 북적이는 파리 백화점이 휴일 영업을 시작한 건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1905년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노동법 제정 이후, 프랑스는 100년 넘게 상점들의 심야 및 일요일 영업을 제한했다. 그런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 오랜 전통을 바꿨다. 그는 2015년 ‘마크롱법(성장, 활동 및 경제기회균등을 위한 법)’을 통과시켜 2017년부터 관광지구 내 상점들의 영업 규제를 풀었다. 활력을 잃던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100년 된 법을 바꾼 프랑스는 덕분에 세계 1위 관광대국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한국에선 정반대의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발법) 개정안은 ‘복합쇼핑몰의 월 2회 강제 휴무’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백화점을 비롯해 영화관, 마트 등이 함께 있는 복합쇼핑몰이 규제 대상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은 여당과 정부의 상생·공정경제를 대표하는 법안으로 분류되며 연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이 법안의 취지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휴일에 쇼핑몰이 쉰다고 장을 보지 못한 사람이 전통시장으로 갈지 의문이다. 세계 유통산업은 시공간을 초월한 온라인 시장의 성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오프라인 매장은 파리의 백화점에서 보듯이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체험형 공간으로 변신하며 살길을 찾고 있다. 국내 복합쇼핑몰도 유통기업이 각종 규제와 유통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찾아낸 신(新)사업이다. 변화에 빠른 소비자는 이제 ‘구매는 온라인, 체험은 매장’이라는 새로운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111년 만의 폭염이 찾아온 지난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쇼핑몰로 몰렸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면 유모차를 끌고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은 쇼핑몰밖에 없다. 쇼핑몰이 휴일에 문을 닫으면 소비자 편익은 떨어지고 관광객의 발길은 줄며 쇼핑몰 입점 업체의 70%를 차지하는 자영업자가 손해를 본다. 유발법 개정안은 마치 앞집 가게가 안된다고 열심히 장사하던 뒷집 가게의 문을 닫게 하는 것처럼 번지수가 틀렸다. 이 법이 진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이 되려면 예상되는 규제 효과부터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
#쇼핑가#휴일 영업#쇼핑몰 규제#골목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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