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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뒤를 이어 책의 세계로…출판인 2세들의 끝없는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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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뒤를 이어 책의 세계로…출판인 2세들의 끝없는 고민

이설 기자 입력 2019-07-23 16:48수정 2019-07-2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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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에서 낸 책 들고 촬영해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내내 출판계 2세 모임 회원들은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주말에 가족 동반 나들이를 가며 끈끈한 우정을 유지한다. 파주=이설기자 snow@donga.com

“엇, 회의실 어떻게 찾았어?”


“피자 냄새 맡고 따라왔지.”

“귤 사왔다. 서울에서 파주로 유학 온 귤이야.”


작정한 듯 유치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사회적 가면을 떨치고 소꿉놀이 시절로 돌아간 동창모임 같았다. 17일 경기 파주시 문발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책으로 둘러싸인 회의실에 하나 둘 방문객이 찾아들자, 미간에 힘을 주고 토론하던 홍예빈(열린책들 상무·37) 홍유진(열린책들 기획위원·34) 남매의 뺨에 홍조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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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도 이런 저런 모임이 많지만, 이날 모임은 ‘출판인 2세’들이 함께 하는 자리다. 9년 전 10명에서 출발해 현재 22명으로 덩치를 키웠다. 김지영 자유아카데미 대표이사(46)와 진성원 백산출판사 상무(45), 이윤규 일진사 기획실장(40), 조한나 푸른숲 기획편집부 과장(38), 김민지 미래M&B 대표(37), 이수철 현문미디어 대표(34), 이소영 아람 대리(28) 등 20대부터 40대까지 모두 부모의 뒤를 이어 출판계에 뛰어들었다.

매달 만나 밥과 술, 고민을 나누던 친목단체였지만 최근 새롭게 닻을 띄웠다. 공부 모임으로 성격을 바꾸고 강사를 초청해 다양한 현안을 배우기로 한 것. 첫 번째 공부 모임 현장을 찾아 지식을 다루는 출판계 2세의 고민을 살짝 엿봤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한 잡지사에서 기획자로 일하다가 2011년 부름에 응해 일을 시작했습니다.”(문승현 세진사 기획팀장)

“회화를 전공했어요. 3년 전부터 어머니 회사에서 디자인, 마케팅, 기획을 차근차근 익히고 있습니다.”(최정현 꿈터 기획·편집 팀장)

강의 시작 전, 피자·콜라·귤이 탁자에 깔리고 새 얼굴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문 팀장은 김두영 삼호뮤직 대표(41), 최 팀장은 김지영 대표의 초대로 왔다. 모임 참여는 부모 세대 모임을 통해 이뤄진다. “아들·딸이 회사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다”며 모임 멤버를 소개팅처럼 연결해준다. 어색함은 잠시. 업과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금세 속내를 터놓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었나요? 다른 사람들은 어때?”

모임 회장인 김지영 대표의 질문에 회원들이 머릿속으로 답을 골랐다. 다들 ‘가업’에 발을 딛기까지 길고 뜨거운 고민을 거쳤다. 출판은 특히 업황이 힘든 데다 창업주의 개성이 분명해 결정이 어려웠단다.

“시무식에 갔다가 얼떨결에 데뷔했어요. 원래 요식업에 관심이 많았죠. 아직도 이 길이 맞나, 자신과 싸우는 중입니다.”(현문미디어 이수철 대표)

“울타리를 벗어나려 오래 노력했어요. 내가 방향을 설정해 나아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문승현)

“지적 컨텐츠를 생산하는 일이라, 웬만해선 부모님이 성에 안 차 하세요. 내 일(광고)을 계속 했어도 이보다 잘했을 텐데….”(김지영)

“어머니가 엄청 좋은 일이라며 딱 1년만 해보라고 하셨어요. 다행히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조한나)

대표도 직원도 아닌 애매한 위치. 그들이 잔뼈가 굵은 편집자들을 내몬다는 아픈 지적도 있다.


“편집자들은 사회적으로 촉이 발달한 분들이라 설득과 소통이 필수예요.”(조한나)

“처음 와서 의욕적으로 답답한 부분을 바꿔보자 했는데, 어느 순간 겸손해지더군요. 기존 틀에서 자리를 잡은 뒤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회사를 성장시킨 동력은 직원들이니까요.”(이윤규)

●앞으로 30년을 걸머진 어깨

국내 출판계는 요즘 지각변동 중이다. 책 읽는 이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가볍게 즐길 거리가 쏟아진다. 홍예빈 상무는 “격하게 말해 사양화되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 30년은 기존 방식으로는 지탱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유튜트를 첫 번째 공부 주제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로 활로를 모색하는 출판계 분위기를 반영했다. 모임 내 유튜브 전도사로 통하는 이소영 대리가 아이디어를 냈다. 유튜브 채널 ‘아람’(구독자 4만9000여 명)을 운영하는 그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얼굴도 공개했다. 젊은 감각의 2세들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유튜브”라고 했다.

“유튜브는 가볍고 재미있는 영상이 각광받잖아요. 책은 깊고 무거운 매체인데,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홍유진)

아직 유튜브에 도전장을 던져 성공한 출판사는 드물다. 출판사 브랜드를 드러내는 순간 시청자들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단다. 이야기적 요소가 풍부한 소설은 사정이 좋은 편이지만, 인문·사회과학서는 영상화하기 힘들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고, 조금만 드러내면 조회수가 바닥”이라는 2세들의 하소연에 이날 강사인 유튜브 컨설턴트 정재곤 씨는 “타깃을 정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서브 채널에 꾸준히 올려야 한다”고 했다.

“중학생 때 아버지께 MP3를 팔지 왜 책을 파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어요. 당신께서 ‘책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이수철)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체를 다루는데, 자부심 없이는 지속하기 힘들지.”(진성원)


“부모님은 어려운 상황에서 잘 이끌어오셨는데, 나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압박이 있지.”(김두영)

하지만 “그래도 갖은 고민을 나눌 이 모임이 있어 다행이야”라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격하게 동의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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