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염려증[횡설수설/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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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단명 일병장수(無病短命 一病長壽)’ ‘골골 팔십(八十)’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약한 몸을 걱정해서 늘 조심하는 사람들이 오래 산다는 말이다. 반면에 자신의 타고난 체질을 믿고 건강관리는 내팽개친 채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꾸라지는 경우도 주변에서 자주 본다.

▷한국은 세계 최장수 국가 그룹의 당당한 멤버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평균수명이 한국 여자는 85.7세, 남자는 79.7세, 전체 평균 기대수명은 82.7세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의 84.2세와 불과 1.5세 차이다. 자살을 제외하고는 암, 치매, 순환기계 질환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축에 속한다.

▷객관적인 건강상태와 주관적인 느낌은 확실히 다른 모양이다.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한국이 29.5%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세계 1등 장수국 일본 사람 역시 거의 3명 중 1명(35.5%)만이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사람들은 10명 중 8명 이상이 스스로 건강하다고 대답했다. 본인의 건강에 관한 한 한국 일본 사람이 ‘쓸데없는 비관주의자’들이라면 미국 호주 쪽 사람들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들이라고 할 만하다.

▷재작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영국의 한 대학이 함께 세계인 수명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2030년에 기대수명이 90세를 넘는 나라는 한국 여성이 유일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인의 장수 양대 비결로 ‘김치’와 ‘건강염려증’을 꼽았다. 건강 관련 TV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만 봐도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사람들이 만나면 건강 관련 주제는 빠지지 않고, 잡지들은 철마다 다이어트 특집을 싣고, 건강보조식품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고 많이 먹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김치 된장 등 발효음식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면역력을 높이면서 암을 예방한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다.

▷한국인의 장수 비결인 건강염려증은 유달리 건강에 대해 걱정과 관심이 많아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는 긍정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도를 지나치면 진짜 정신병이 될 수 있다. 건강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불안증세를 수반하는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으로 이끈다는 말이다. 건강에 대한 염려도 적당하면 장수 비결이요 과하면 정신병이다.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건강염려증#최장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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