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내 여론을 통해 전망해 본 한일관계[동아광장/한규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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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일변도 충돌 치닫는 한일관계 속 “일본인은 日정부와 다르다” 주장도
최근 여론조사선 反韓감정 격화 뚜렷… 아베의 수출규제 지지하는 분위기
이제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일(韓日) 갈등이 격화일로다. 양국 정부 모두 강경 기조로 맞서고 있다. 우리 언론이나 일본 전문가들의 시각은 아베 정부와 일본 여론을 분리해서 보는 듯하다. 일본의 일반인들은 ‘극우적’ 아베 정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맞다면 현 상황이 아베 정부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희망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인식을 지지하는 기존 연구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은 일본의 비영리기관인 언론NPO와 공동으로 한일 양국에서 2013년부터 상호인식 조사를 해 오고 있다.

2013년 조사에서 한국인의 76.6%가 일본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반면 일본인의 37.3%만이 한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즉, 한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인 한국의 입장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는 방법론적 한계가 명확하다. 필자는 2016년 일본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양국에서 ‘내재적 연합 검사(IAT·Implicit Association Test)’를 수행했다. IAT는 긍정적-부정적 형용사와 특정 집단을 연결시키는 속도에 근거해 해당 집단에 대한 응답자의 감정적 선호를 측정하는 심리학적 방법론이다. 즉, 머릿속에서 해당 집단과 긍정적-부정적 형용사가 연결돼 있는 강도에 따라 응답이 결정돼 설문조사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답을 하려는 경향(social desirability)’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대로 한국인들은 설문조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내재적’ 감정이 한국인들의 반일(反日) 감정 수준과 통계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인 상당수가 한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것. 한국인들이 가진 반일 감정의 깊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결과였다.

지난달 말 발표된 동아시아연구원-언론NPO의 2019년 상호인식 조사 결과는 일본인들이 이러한 내재적 감정을 서슴없이 표면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 발표 이전인 5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양국에서 실시된 조사임에도 한국과 일본 모두 응답자의 49.9%가 상대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양국 간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일본인의 20%만이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답해 한국인의 31.7%보다 낮았다. 필자의 2016년 IAT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가해자로서 설문조사에서 ‘완전히’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일본인들이 최근에는 반한(反韓)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내재적’ 반한 감정이 측정 가능한 여론으로 표집되기 시작했고 이는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가진다. 아베도 여론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 여론의 변화가 없었다면 아베 정부가 이번 수출 규제를 단행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번 조사에서 일본인의 50.9%(한국은 84.4%)만이 “상대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답했고, 40.2%(한국은 70.8%)만이 “상대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양국이 모두 원한다”는 전제하에 “중재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했지만 일본 국내 여론상 지금으로선 일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를 원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카드가 미국을 압박해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이번 설문에서 “한일 방위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답한 일본인은 12.8%(한국은 20.4%)에 불과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카드의 효과를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국 정부 모두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일 갈등의 장기화를 상수(常數)로 간주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일본 수출 규제#반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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