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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도도 인재가 없으면 쓸모없다[Monday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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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도도 인재가 없으면 쓸모없다[Monday DBR]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대학 연구교수입력 2019-07-22 03:00수정 2019-07-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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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만들어지면 폐단이 생겨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근심거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1447년 8월 18일 현직 하급 관리들이 치르는 과거 시험에서 세종이 출제한 시험 문제다. 세종은 ‘법의 폐단’에 관해 질문했다. 아무리 좋은 법도 단점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책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없었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는 것이 세종의 질문이었다.

1447년은 세종의 재위(1418∼1450년) 후반기다. 그때까지 세종은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해 6진 4군을 개척하고, ‘향약집성방’과 ‘농사직설’ 등을 편찬해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우리만의 역법을 확립하기 위해 ‘칠정산’을 지었고 해시계 앙부일구, 물시계 자격루, 신무기 신기전을 개발하는 등 과학기술을 진흥시켰다. 다양한 서적을 간행하고 음악을 정비해 문화의 중흥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성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했으며, 조세제도를 정비했다. 인사, 법, 행정, 예제 등 통치 체제를 정비했을 뿐 아니라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라 불리는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했다.

이처럼 쉴 새 없이 달려오기를 어언 29년, 세종은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고 정신적으로도 큰 아픔을 겪으면서 본인의 지난 여정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특히 그는 수많은 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었으며 관행과 구습에서 탈피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펼친 바 있다. 따라서 걱정도 생겼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단점이 있지 않을까? 지금 꼭 필요하다 싶어서 단행한 개혁이지만 훗날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까? 세종의 질문은 바로 그와 같은 우려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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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질문에 대해 네 사람의 답안지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신숙주의 답안이 눈길을 끈다. 신숙주는 “법에는 폐단이 없을 수 없으니 마치 오성육률(五聲六律)에 어지러운 음악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법에 부작용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법은 애당초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하지 못한다. 하물며 법은 규칙으로 고정되는 것이므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끊임없이 개정하지 않는 한 당연히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고치기만 하는 것이 능사일까? 세종은 고려 말기에 왕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지고 권세가들이 권력 투쟁에 혈안이 돼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왕의 재결권을 강화했더니 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이 비대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지금도 리더 중심의 1인 지배 체제가 강화될 경우 리더의 비서 조직이 커진다. 역대 정권의 청와대나 재벌그룹의 비서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양상은 공적인 지휘 체계를 무너뜨리고 업무 투명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쉽다. 리더 한 사람에게 모든 힘이 몰려 있기 때문에 문고리 권력의 전횡도 나타난다. 이에 대해 신숙주는 “정사를 제멋대로 결정하는 폐단을 막으려면 크고 작은 일을 반드시 의정부를 거치게 하고 승정원은 삼가고 경계토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신숙주는 “법의 폐단을 예방하고 다스리기 위한 근본은 반드시 인재를 얻어서 일을 맡기는 데 달려 있는 것”이라며 “적합한 인재가 있는데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그 말을 따르지 않거나, 그 말을 따르더라도 그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비록 법을 하루에 백 번 바꾼들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고 강조했다. 좋은 법을 만들고 폐단이 생겨나지 않도록 그 법을 올바르게 운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제대로 지켜나갈 사람이라는 것이다.

법과 제도, 시스템이 폐단을 낳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올바르게 작동될 수 있도록 리드하는 인재가 없어서일 때도 많다. 신숙주의 답변은 이 점을 환기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즉, 폐단을 우려하기에 앞서 적임자를 찾아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제도를 만들고 그 분야 최고의 인재를 찾는다면 앞으로 있을지 모를 폐단도 그 인재가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대학 연구교수 akademie@skku.edu
#과거 시험#신숙주#세종#법의 폐단#최고의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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