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노후자금 터는 보이스피싱… 작년 피해액 987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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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상 고령자 표적으로 삼아… “아들 납치” “안전한 곳에 돈보관”
피해액 1년새 3배로 늘어

지난달 26일 70대 여성 A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낯선 목소리였다. 전화를 건 남성은 “아들이 친구 빚 2000만 원 보증을 섰는데 친구가 갚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납치했으니 2000만 원을 들고 나오라”며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아들을 해치겠다”고 협박했다. 놀란 A 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현금 2000만 원을 찾아 남성이 알려준 서울 서초구 주택가의 한 골목으로 갔다. 골목엔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으로 앳돼 보였다. A 씨가 5만 원권 지폐 400장이 담긴 흰색 봉투를 건네자 이 외국인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

몇 시간 뒤 아들과 통화가 된 A 씨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했다는 걸 알고 112에 신고했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A 씨에게서 돈을 건네받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회수책’ B 군(17)을 불심검문을 통해 붙잡았다. 경찰이 조사를 해보니 B 군이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돈을 건넨 60, 70대 여성이 3명 더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은 4500만 원을, 나머지 2명은 각각 1000만 원을 B 군에게 건넸다.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들이 당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은 2016년 255억 원에서 2017년 296억 원, 2018년 987억 원으로 증가세다. 보이스피싱 범죄 전체 피해액 중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피해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20%를 넘어섰다. 2017년엔 12.4%였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가 올해 3월 붙잡은 보이스피싱 조직도 주로 60세 이상 고령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우체국 직원을 사칭한 조직원들은 피해자들에게 “계좌 명의가 도용돼 돈을 안전한 곳에 따로 보관해야 한다”며 통장에 들어있는 돈을 인출해 집 안의 냉장고나 TV 뒤에 숨겨놓으라고 한 뒤 이런 돈을 챙겨 갔다. 올해 1월 서울에선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600만 원을 건넨 80대 남성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돈을 되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80대 남성이 거주했던 아파트의 한 관계자는 “숨지기 전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걸 자책하며 술을 마셨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고령자들을 표적으로 삼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늘어나자 연극과 뮤지컬로 피해 예방 교육에 나선 곳도 생겼다. 금융위원회 산하 사단법인 시니어금융교육협회는 지난해 3월부터 시중 은행들과 함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한 뮤지컬과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과 경기 부산에서 뮤지컬 20회, 연극 25회 공연을 했다. 2만여 명의 60세 이상 고령자가 공연을 관람했다.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회 사무총장은 “어르신들이 강사가 말로 설명하는 교육은 10분만 지나도 지루해하지만 연극 공연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검거되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시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고령자 표적#보이스피싱#노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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