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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130번 민관간담회 매번 ‘쇼통’에 그친 이유[광화문에서/홍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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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130번 민관간담회 매번 ‘쇼통’에 그친 이유[광화문에서/홍수용]

홍수용 경제부 차장 입력 2019-07-19 03:00수정 2019-07-1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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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경제부 차장
르노삼성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A 씨는 올 4월 르노삼성 파업 당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장관이 복잡한 노동정책을 줄줄이 꿰고 있어 놀란 반면 완성차업체와 노조의 현실을 너무 몰라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책상에서 만든 정책에는 해박해도 정작 정책의 타깃인 현장에 무지한 한국 공무원의 단면을 A 씨는 그날 간담회에서 봤다.

대내외 악재가 터지면 정부는 민관합동회의를 연다. 회의 순서는 상황 보고, 전망, 대책 논의로 늘 같다. 회의 후 보도자료에는 ‘시장 모니터링, 선제적 조치’ 같은 소리뿐이다. 이런 회의가 2, 3시간씩 걸리는 이유를 정부 당국자에게 물었더니 “뻔한 자료라도 읽고 의례적인 대책이라도 얘기는 해야지, 금방 끝내면 남 보기 이상하지 않으냐”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통 실적’은 과거 정부보다 낫다. 현 정부 들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관료들은 민간과 130번 넘게 간담회를 했다. 지난 정부 첫 2년 동안 해당 부처가 민간과 가진 간담회는 60번 정도였다.

민관이 많이 만나고도 기업 환경이 그대로인 것은 회의가 보여주기에 그쳤기 때문일 수 있다. 문제가 그것만은 아니다. 관료들이 뭘 잘 모르고 변죽만 울린다는 지적이 많다. 일례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화제가 된 2016년 이후 관료들은 4차 산업혁명 노이로제에 걸렸다. 민관회의를 거쳤다며 쏟아낸 정책에는 전기차 지능형로봇 바이오헬스 드론 등 새로운 문물이 망라됐다. 디지털이 특징인 4차 혁명에서 신산업에 도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 원천기술이다. 반도체 대국이라도 기판을 깎지 못한다면 수출은 중단될 것이고 자율차 주행실험 거리가 수십만 km에 이르러도 광학렌즈 없이는 눈 없이 운전하는 격이다. 정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힘든 원천기술 지원을 후순위로 미루다가 지금 일본의 경제 보복과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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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장관은 전문성 면에서 누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장 의견 수렴 후 정책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책임질 수 있다. 한국 장관들은 민감한 이슈가 터지면 ‘갈등의 소지가 없게 대안을 내라’고 실무진에 지시한다. 국과장과 사무관들은 그때부터 적게는 3개, 많게는 5개에 이르는 시나리오를 짠다. 국토교통부는 승차 공유 논란과 관련해 모빌리티 업체가 택시면허를 사도록 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정부와 협의해 온 것과 동떨어진 정책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리더가 전문적 판단으로 정책을 주도하는 대신 뒷전에서 갈등만 봉합하라고 부추긴 것은 아닌가.

정부와 기업은 경제라는 자전거를 굴리는 두 바퀴다. 수시로 만나야 하지만 대규모 간담회는 비효율적이다. 김현철 전 대통령경제보좌관은 2017년 말 8대 그룹 경영진과 만찬회동을 하려다 논란이 되자 취소하고 기업인과 개별적으로 연락해 비공개로 만났다. 누구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깊고 실질적인 대화를 한다면 조용한 만남이 ‘쇼통’보다 낫다.

정부가 기업에 정책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면 세제 지원이 단골 메뉴로 나온다. 건의하라고 하니 안을 짜낼 뿐 기업이 세금 때문에 투자나 고용을 하는 건 아니다. 기업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사실 가만 내버려두는 것이다.

홍수용 경제부 차장 legman@donga.com
#민관간담회#쇼통#노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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