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출신 남편, ‘배달의 민족’인 아내에게…“주문 좀 줄이자, 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8일 16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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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오후 9시 30분쯤, 우리 집에서는 여느 때와 같은 드라마가 펼쳐졌다. 아내가 휴대폰을 보면서 나더러 “내일 어떤 주스를 마시고 싶어? 그리고 내일 점심 약속 있어?”라고 급히 물었다. 다급해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오후 11시가 되기 전에 온라인 배달 앱으로 주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너무 늦으면 주스가 다 떨어지거나 다음날 아침에 배달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속옷차림으로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엊저녁 주문해 배송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옆집에서 누가 바로 그 순간에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물건들을 집어 들고는 후다닥 집으로 들어갔다.

이렇듯 아내는 배달의 민족임을 입증하듯(?) 매일 저녁에 주스와 다른 아이템(빵, 과일, 야채, 달걀, 아이스크림까지)들을 휴대폰에 깔린 앱으로 주문하곤 한다.

이 습관은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 거의 가지 않게 됐다. 아침으로 즐겨먹는 뮤즐리는 앱으로는 아직 구할 수 없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트에 갈 뿐이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고, 기다리고,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 집에 가는 스트레스가 이제 없어졌다.

하지만 다른 변화도 같이 왔다. 우리 아파트 단지 동 대표 모임은 몇 년 전부터 지상에 자동차, 오토바이가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그래서 길은 체인으로 막혀있다. 배달원이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아파트에 출입하기로 돼있는데 많은 배달원이 그것을 아예 모르거나 ‘오토바이 출입 금지’라는 사인을 무시하고 지상으로 왕래한다. 며칠 전, 아파트 단지 내에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다가오기에 피하고자 길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놀라 정신을 차리고 나니, 만약에 언젠가 어린아이가 배달 오토바이에 치어 병원으로 가게 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주스를 매일 주문해야 하는가? 아내 말에 의하면 신선하게 먹을 수 있어서 그렇단다. 하긴 신선한 게 맛있다. 그런데 항상 페트병으로 받아야 하고, 마시고 나서 그 페트병을 버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스병이 얼음 팩과 같이 버블 랩 봉투 혹은 종이상자에 포장된 채 온다. 특히 온도를 유지해줘야 하는 상품이라면 비록 1개를 주문하더라도 냉동식품 상자 하나, 냉장식품 상자 또 하나, 그리고 실온 식품 상자 한 개 등 다른 포장 방법과 다양한 크기의 상자 혹은 버블 랩 팩이 켜켜이 쌓여서 현관문 앞으로 배달된다. 폐기물을 생산해낸다는 것,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문제다. 마트에 갈 때 보다 더 많은 폐기물이 생긴다.

물론 매번 이 모든 포장물을 까다롭게 분리하고 재활용품을 모으는 곳에 갖다 버리고 있다. 종이상자를 납작하게 만들어 다른 종이와 내놓고, 페트병은 다른 플라스틱과 함께 모아 버리는 등 말이다. (그런데 얼음 팩은 재활용 못한다. 아파트 문밖에 놓으면 배달하는 회사가 매일 도로 가져간다.) 우리 단지에서 나만큼 잘 분류하고 갖다 버릴 사람이 또 있겠나 싶을 정도로 분리수거를 잘하고 있다. 하지만 뭔가 양심이 찔린다. 과연 이 모든 폐기물이 제대로 재생될까? 요즘 재활용 문제에 대한, 특히 마이크로 플라스틱 오염 보도를 접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재활용 폐기물이 하도 많아서 가치가 떨어져서 더 이상 재활용 할 의미가 없다는 회사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전 세계에서 제일 깊은 대양저에서도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견됐다는 보도도 봤다. ‘설마 내가 아침에 마시던 주스 페트병은 아니겠지?’ ‘이것이 우리 현대인의 미래인가?’ ‘우리의 편의 대신에 지구의 환경. 천연자원을 희생해야만 하는가?’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책임을 과장하고 싶지 않다. 개인 소비자보다 기업이 훨씬 큰 오염 유발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토바이들이 위험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퀵 서비스, 중화요리 혹은 피자 배달원의 사고가 많았다. 여전히 자동차 운전자가 주변의 오토바이들을 조심하는 센스조차 별로 없다. 하지만 다 연계돼있고 우리 모두 다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야. 이 칼럼을 읽고 있다면 우리 배달 주문 좀 줄이자, 응?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여보자.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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