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도 없이 주문량 갑자기 절반으로”… 日 ‘보이지 않는 장벽’에 기업들 시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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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제보복 파장]수출규제 무관한 품목까지 확대
바이어들 日정부 의식 접촉 꺼려… 회의 미루고 대금결제 늦추기도



“일본 마트들이 우리 제품 주문량을 절반 이상 확 줄였어요.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입니다.”

조미 김 제조 및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A사는 7월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이 본격화된 후 첨단 기술과 관련이 없는데도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이 업체는 2014년 25억 원이던 일본 수출액이 상반기(1∼6월)에만 50억 원을 돌파하자 올해 100억 원까지 뛸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주문량이 더 늘어날 것에 대비해 약 4억 원을 들여 설비도 보강했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일본 마트들이 주문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가동률이 30%만 돼도 다행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며 “일본 현지 바이어들은 ‘상황을 지켜보자’는 원론적 대답만 하며 접촉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 보복의 여파로 한국의 중소·중견기업들이 일본의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6년 한중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당시 민간 경제 교류가 침체를 겪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중소기업까지 큰 타격을 입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업계에서도 사업이 지체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 바이어와 예정됐던 회의가 연기되거나, 일본 거래처와 연락이 잘 닿지 않거나, 응답이 평소보다 늦어지는 등 기류 변화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철강 부품 업체 B사 대표는 “이전에는 일본 거래처가 수시로 우리 회사에 들러 주문한 제품을 검사했는데 수출 규제가 시작된 이후 오지 않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 같다”고 했다. B사는 일본 거래처의 실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납품은 물론이고 대금 결제까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수출 규제 품목이 아닌 업계에서도 이미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주문량이 줄어드는 건 시간문제”라고 걱정했다.

기계 설비를 제조해 일본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C사도 최근 거래처로부터 “한국에 가도 안전하냐. 테러 위험성은 없나”라는 문의까지 받았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한국 방문을 주저했다는 것이다. C사 대표는 “올해 경기도의회가 학교 내 비품에 일본 전범 기업을 표시하는 스티커를 표시하는 조례를 추진했을 때도 일본 거래처로부터 문의가 왔지만 이 정도 반응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우대 국가)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기업마다 혹여 피해를 입을까 KOTRA 등에 문의하며 정보 파악에 나서고 있다. 조선업체 D사는 “항법장비, 베어링(축받이), 가스감지기 등 일본에서 수입했던 물품들을 확보하려고 일본 회사들에 문의했지만 ‘정부 측 안내사항이 없어 구체적 답변을 못하겠다’는 원론적인 얘기밖에 듣지 못했다”며 답답해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벌써 무역 장벽이 높아졌는데 앞으로 불확실성이 더 커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김호경·서동일 기자

#일본 경제보복#수출 규제#백색 국가#무역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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