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약을 먹는 아빠들의 마음 [변종국 기자의 슬기로운 아빠생활]<16>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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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해지자. 필자는 정기적으로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다. 바로 탈모약이다.

아빠들에게 “혹시 약 드세요?”라고 물었을 때, 질문 받는 아빠가 ‘뜨끔’ 또는 ‘피식’의 감정을 느낀다면 탈모를 신경 쓰는 아빠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필자와 같이 유전적 탈모자(아버지 죄송합니다)의 경우 “약 드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고개를 숙일지도 모르지만, 요즘 나는 당당하게 말한다. “네, 아○○트요” (※아○○트는 남성 탈모약의 하나로 탈모자들 사이에서 프○○○○아와 함께 2대 탈모약으로 꼽힌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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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약이 슬기로운 아빠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한 30대 아빠 취재원 A씨의 이야기다. 나와 동병상련인 A씨. 모발 이식과 탈모약 복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뿐인 딸 때문이었다. 딸의 어린이집 참관 수업이 있던 날, A씨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자칫 딸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빠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 A씨는 나이가 들수록 모발이 얇아지고 풍성했던 머리가 점점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아했다.

웹툰 ‘청춘극장’ 캡처
웹툰 ‘청춘극장’ 캡처


하지만 다른 아빠들의 풍성한 모발을 목격하고는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남자들의 외모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는 모발의 중요성을 실감했던 것이다. ‘남자는 머리 빨’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의 헤어스타일이 외모 및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아빠들은 공감할 것이다. 군대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뒤 동기들과 나의 얼굴을 봤을 때 느낌을! 가관이다. 탈모를 고민하는 또 다른 취재원은 이런 말을 했다 “유치원 행사 가보면 꼭 모자 쓴 아버지들 있죠. 그 이유를 나는 알지…”

A씨는 어린이집을 다녀온 뒤 병원을 여러 곳 방문해 상담을 받았다.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머리카락들아 제발 딸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만 버텨줘!” 아이들이 철이 들 때까지. 아빠의 탈모를 보고 슬퍼하고 또 애잔함을 느껴주기 시작하는 그날까지 만이라도 제발 버텨 달라는 간절함이었다. 내 아이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멋있는 아빠로 남고 싶은 것이 아빠들의 마음이기에…. A씨에게 “자식들이 아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지 않을까요?” 라고 물었다. A씨는 냉정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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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고백은 필자를 탈모 병원으로 향하게 했다. 의사가 “아이가 몇 명이냐”고 묻더라. 두 명이라고 했다. 셋째 생각은 있냐고 물었다. 당시엔 그 질문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의미에 대해서는 포털을 검색하세요) 셋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약을 드세요”라고 하며 아○○트 처방해 줬다. 가끔 머리가 나는 사람도 있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메시지도 전해줬다. 물론 머리가 새롭게 솟아오르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히 화장실 배수구가 막히는 빈도수가 줄어든 것 같다. 그렇게 나의 ‘탈모약 라이프’는 시작됐다.

물론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꽤 많은 할아버지들이 벗겨진 머리를 보고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피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모자나 가발 착용을 고민한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늙어 간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또한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불현듯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가 생각난다. 집에 오니 어머니가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를 맞이해 주셨다. 속으로 “어디 나가려고 하나? 왜 화장을 하셨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세월의 야속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셨을까?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만, 탈모약을 받아든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떠오른다.

이 글을 보고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것이냐” “그래서 탈모약을 먹으라는 것이냐”고 비판하지 말아주세요. 그저 자식들에겐 오랜 기간 ‘외모마저’ 멋진 아빠로 남고 싶은 마음을 담았을 뿐입니다.

변종국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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