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다 못해 격렬하기까지 한 사랑 고백…한시 맞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7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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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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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시여!/ 내 님과 사랑을 맺어/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으리라.

산줄기가 없어지고/ 강물이 다 마르고/ 겨울에 천둥이 쾅쾅거리고/ 여름날 눈보라가 치고/저 하늘과 땅이 합쳐진다면/ 그때는 기꺼이 님과 헤어지리다.

(上邪! 我欲與君相知, 長命無絶衰. 山無陵, 江水爲竭, 冬雷震震, 夏雨雪, 天地合, 乃敢與君絶.)
상야! 아욕여군상지, 장명무절쇠. 산무릉, 강수위갈, 동뢰진진, 하우설, 천지합, 내감여군절.

-‘하늘이시여(상야·上邪)’·한대 민가

거침없는 사랑 고백이다. 화자는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이런저런 자연현상을 들어 마음을 토로하는데, 그 절정은 ‘저 하늘과 땅이 합쳐진다면 그때 기꺼이 님과 헤어지겠다’는 언약이다. 고대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 할 만하다. 첫 구에서 ‘하늘이시여’라고 했으니 스스로 사랑을 다짐하는 독백 같기도 하고, 눈앞의 상대에게 하소연처럼 대담하게 고백하는 장면인 듯도 하다. 화자의 성별은 알 수 없지만 남녀 불문하고 봉건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법은 아니다. 당당하고 솔직하다 못해 격렬하기까지 한 이 자신감은 현대적 감각이나 셈법으로도 제법 낯설게 느껴진다. 기실 이런 자유분방함은 민요의 발상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은 한시의 말본새가 우아하고 점잖기만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사대부 문인들은 노심초사 어휘를 고르고 가다듬기를 반복하고, 행여 정해진 격식을 벗어나지 않을까를 경계했지만 민가는 달랐다. 억압과 굴레에 저항했고 관습이나 편견에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그 에너지는 바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와 같은 내면의 원형적 갈구로부터 분출되었다.

한시는 좁게는 ‘한대에 창작된 시’로만 한정하기도 하지만 당시 한국 한시처럼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한자로 표기된 모든 고전시’를 일컫기도 한다. 이 시는 1구의 자수가 들쑥날쑥 자유롭다. 그것은 한대에는 아직 5·7언 근체시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고 또 민가인 만큼 발상과 기세가 더 자연스러웠다는 증거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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