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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 별세… 국내 발효유 시장 개척 ‘야쿠르트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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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 별세… 국내 발효유 시장 개척 ‘야쿠르트의 아버지’

강승현 기자 입력 2019-06-27 03:00수정 2019-06-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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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유산균 음료 처음 들여와 1995년 국산화… 年매출 1조원
장학재단 설립 등 사회공헌 힘써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저소득층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제공
아흔을 넘긴 ‘회장님’은 오전 9시 반이면 회사로 출근해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대문짝만하게 난 정치 이야기보다 회장님의 시선이 오래 머무른 곳은 ‘어려운 형편의 사람 이야기’였다. 기사를 읽고 나면 직원에게 ‘사정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라’고 말했다. 회장님의 근무복, 양복, 벨트는 모두 20년이 넘은 낡은 것들이었다. ‘나를 알고 나를 이기자’라는 좌우명으로 평생을 살 만큼 자신에겐 엄격했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1969년 회사 설립 이후 평생을 나눔 실천을 위해 힘쓴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26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유산균 음료’를 국내에 처음 들여오며 ‘발효유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다. 초기에는 일본야쿠르트의 유산균 생산 기술을 빌렸지만 1976년 식품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한 끝에 1995년 첫 국산화에 성공했다. 2018년 말 기준 야쿠르트(오리지널 제품) 누적 판매량은 490억 개를 넘어섰고 매출은 1980년 366억 원에서 지난해 1조384억 원으로 성장했다.

고인은 야쿠르트 하면 떠오르는 방문판매 조직인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누구보다 아꼈다. 유산균 음료에 익숙지 않았던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택했던 방판 조직은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을 키워준 ‘일등공신’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은 차를 타고 가다가도 길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면 차에서 내려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평소 나서는 걸 지극히 꺼리는 그였지만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모이는 ‘야쿠르트 대회’ 때는 직접 무대에 올라 한 달 전부터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고인은 1970년대 당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집했다. 김병진 현 한국야쿠르트 대표이사를 포함해 여러 명의 야쿠르트 사원 출신 대표들이 탄생한 것은 ‘야쿠르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경영을 해야 한다’는 윤 회장의 평소 생각이 반영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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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의 대중화 외에 큰 공을 들인 부문은 교육 지원 사업이다. 1979년부터 최근까지 ‘전국 학생 과학 발명품 경진대회’를 후원했고, ‘전국 어린이 건강 글짓기 대회’와 ‘유산균과 건강 국제학술 심포지엄’ 등 다양한 교육 학술 사업을 진행했다. 2010년에는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인 ‘우덕윤덕병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을 지원해 왔으며 이는 야쿠르트의 대표 사회공헌사업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속적인 나눔을 실천한 노력을 인정받은 윤 회장은 1988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2년 보건대상 공로상, 2008년 한국경영인협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이며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8일 오전 6시. 유족으로는 부인 심재수 씨와 아들 호중 씨, 딸 혜중, 화중, 귀중, 정원, 귀영 씨가 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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