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박근혜 구속 알리자 ‘마주치면 면목없어 어쩌나’ 토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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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변호사 회고록서 밝혀


“구치소 내에서 서로 마주치면 면목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2017년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67·수감 중)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은 최순실 씨(63·수감 중)는 변호인에게 이같이 토로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 최 씨는 수차례 “죽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구치소에서 최 씨를 면회했던 이경재 변호사(70)는 회고록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구속 당일 최 씨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 씨는 박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돼 자신이 수용돼 있는 서울구치소에 함께 있게 되자 기구한 운명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최 씨가 귀국해 수사, 기소,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

○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재판 받고 싶지 않아”

동아일보가 26일 입수한 이 변호사의 회고록 ‘417호 대법정’에 따르면 최 씨는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인 2012년 3월 이 변호사를 처음 만났다.

최 씨는 이 변호사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을 당시 남편 정윤회 씨(64)와 함께 찾아왔다. 이 변호사의 서울대 법대 1년 선배이자 사법시험 동기 변호사가 정 씨의 명예훼손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그 전까지 최 씨와 아무런 인연도 없었다.

이 변호사는 그날 이후 최 씨를 ‘최 원장’이라고 부르며 법률 상담을 해줬다. 법률고문료는 월 200만 원이었다. 사무실에서 상담할 때에는 정 씨가 대부분 얘기했고, 최 씨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2014년 11월 정윤회 게이트 사건, 2016년 10월 최순실 의혹 사건 보도가 봇물을 이룰 때까지도 최 씨와 박 전 대통령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고 적었다.

최 씨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을 받기 전엔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재판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 변호사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2017년 5월 23일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에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는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고, 이 장면이 TV로 생중계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법정에서 최 씨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최 씨도 박 전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마음을 비운 것으로 비쳤다. (최 씨도) 이런 처지에 놓일 줄 꿈엔들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 “딸을 왜 증인으로 세우는지 이해 못해”

회고록엔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3)에 대한 뒷얘기가 포함되어 있다. 2016년 10월 최 씨가 귀국한 이후 정유라 씨는 가끔씩 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근황을 물었다. 2017년 7월 정유라 씨가 최 씨 측과 연락을 끊고 잠적한 뒤 최 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당시 최 씨는 “유라는 (국정농단 사건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왜 증인으로 세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최 씨가 귀국한 이후 딸은 외톨이가 됐고, 고립무원 상태에 놓였다. 최 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일들을 20대 초반의 딸에게 알려주고 함께 상의하는 성향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회고록의 제목을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1심 재판이 열렸던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따왔다. 대법원 선고 직후 회고록을 출간할 예정이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는 국정농단 사건 2심에서 각각 징역 25년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경재 변호사#최순실#박근혜#국정농단#정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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