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그가 바라는 나라,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동아광장/김석호]
더보기

그가 바라는 나라,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동아광장/김석호]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입력 2019-06-24 03:00수정 2019-06-24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모두의 바람은 ‘개천에서 나는 용’ 아닌
물고기로 살아도 삶의 존엄 유지하는 사회
결과가 평등에 가까운 사회가 더 필요해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가 또박또박 결기를 보이며 읽어 내려간 이 말을 듣는 순간 몸이 떨렸다. 아름다운 명문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원했던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지향한 바를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현실로 만들 것 같은 희망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 살고 싶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이 바라던 그 나라에 살고 있나? 한 사회의 불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지니계수와 상대적 빈곤율, 사회조사 등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정의로운 결과에 반하는 사례만 계속 쌓인다. 정부가 지속 가능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원인을 계층 간 격차로 지목하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계속 추진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따로 간다. 모두에게 설렘을 줬던 대통령의 ‘그 말’은 현실과 무관한 정치적 수사로 변했다. 대통령의 말은 겉만 번듯한 무책임한 정치인의 말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그의 언어는 촘촘히 연결된 공공 기관과 공무원 조직의 목표와 비전, 그리고 관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규범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제도와 정책은 국민의 삶을 좌우한다. 그래서 이제 ‘그 말’에 어떤 문제는 없었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기회가 평등한 사회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출발선에서의 기회가 평등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도 대통령이 정치적 수사를 통해 희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 5년의 반환점을 눈앞에 둔 지금, 정치적 수사가 주는 막연한 위안만으로 버티기에 우리의 현실은 훨씬 엄중하고 절박하다. 대통령이 기회의 평등을 노래하고 이 노래에 화음이 맞는 통계를 찾아 합창을 권하는 동안 편향된 현실 인식과 불가능한 목표 설정에 기초한 대통령의 말이 성과 없는 정책과 예산의 허비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기사

과정의 공정도 마찬가지이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고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부와 명예가 자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사회에서 과정의 공정이 무슨 소용이랴. 여기에서 공정은 개천에서 선택된 용이 거치는 대관식의 식순일 뿐이다. 형식적인 공정보다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되지 못해도 결과에 수긍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정, 즉 과정의 투명성이 더 중요하다. 또한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끈적한 바닥과 특권이 대물림되는 접착제 같은 천장이 존재하는 한 어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도 정의로운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대통령이 바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인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기약 없는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노량진 학원가에서 컵밥과 삼각김밥으로 버티는 이유는 끈적한 바닥을 탈출할 다른 선택지가 공무원과 대기업 말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기회를 아무리 평등에 가깝게 만들어도 뛰어난 인재들이 같은 곳만 바라보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주고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청년들이 발칙한 생각을 무모한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미래를 위한 혁신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과감한 시도를 하는 청년이 실패해도 다른 시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보장해 줘야 한다. 단 한 번의 실패가 여생의 실패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개천에서 나는 용’ 담론에 익숙해져 있으며, ‘용이 되는’ 내러티브가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것의 복원에 강박적으로 집착해 왔다. 물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다. 하지만 개천에서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먹이를 찾으며 만족하며 사는 물고기에게마저 용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개천의 모든 물고기가 용이 되기를 원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가 어떤 물고기로 살든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스스로 삶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유명해지거나 대박이 나지 않더라도, 그 결과의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만큼이 아닌, 행복의 색깔에 있어 차이일 뿐인, 결과가 평등에 가까운 사회가 우리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대한민국의 현실, 청년의 각박한 삶, 미래를 위한 혁신만을 생각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그 말’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으면 한다.

“기회는 다양할 것입니다. 과정은 투명할 것입니다. 결과는 평등할 것입니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평등한 사회#개천에서 나는 용#대한민국 미래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