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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백자 항아리-궁중 도장 국내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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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백자 항아리-궁중 도장 국내 환수

유원모 기자 입력 2019-06-20 03:00수정 2019-06-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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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美 뉴욕 경매에서 매입, ‘중화궁’ 실재 입증 단서로 기대
정조의 딸 숙선옹주가 머물던 ‘이동궁’이라는 글자가 바닥에 적힌 ‘백자 이동궁(履洞宮)명 사각호’(왼쪽 사진)와 ‘중화궁인(重華宮印)’ 인장.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내일의 상참(常參)에 빈대(賓對)를 겸하여 설행하겠다. 처소는 중화궁(重華宮)으로 하겠다.”(승정원일기 순조 11년 윤3월 9일)

조선 후기 왕실에서 작성한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는 ‘중화궁’이라는 장소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19세기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1828년)에선 중화궁을 찾을 수 없다. 과연 실제로 존재했던 곳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어줄 귀한 유물이 최근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9일 “조선왕실 유물로 추정되는 ‘중화궁인(重華宮印)’ 인장 1점과 ‘백자 이동궁(履洞宮)명 사각호’ 도자기 1점을 올해 3월 미국 뉴욕 경매에서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이번 환수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후원했다.

중화궁인의 손잡이는 서수(瑞獸·기린을 닮은 상서로운 동물) 모양이고, 도장을 찍는 면인 인면(印面)에는 전서와 해서체로 글자를 새겼다. 7.2cm 정사각형 크기에 높이는 6.7cm.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는 ‘당시품휘(唐詩品彙)’ 서적에 같은 모양의 인장이 있어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며 “중화궁은 특정 건물이라기보다 창덕궁 동쪽 일대를 뜻하는 권역 개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는 바닥에 청화기법으로 ‘이동궁(履洞宮)’이라는 푸른색 글자가 적혀 있다. 이동궁은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1793∼1836)가 ‘이동’으로 시집갔다는 기록이 있어 옹주의 궁가일 가능성이 크다. 최경화 서강대 전인교육원 강사는 “조선백자 가운데 청화(靑華) 글씨가 확인된 사례는 이동궁 말고는 흥선대원군 거처인 운현궁(雲峴宮)과 경복궁 재수합(齋壽閤) 정도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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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조선 왕실 도장#중화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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