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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로데오거리, 멋의 거리에서 맛의 거리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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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로데오거리, 멋의 거리에서 맛의 거리로 변신

구자홍 기자 입력 2019-06-15 10:15수정 2019-06-1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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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변신
패션 가게 속속 문 닫고 직장인 겨냥 식당 늘어…임대료도 절반으로 뚝
[구자홍 기자]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한국의 유행1번지라는 말로 대표된다. 이곳은 90년대 초 패션의 중심가로 자리 잡으면서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기존 질서나 가치로부터 탈피하려는 문화의 거리로 탄생되었다. 과거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베벌리힐스의 로데오거리를 표방하면서 부유층 자녀들이 외제차와 고급브랜드 옷을 입고 활보했던 곳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젊음의 문화를 대변하는 곳으로, 첨단 유행을 대표하는 곳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지로 한국관광공사가 소개한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대한 설명이다.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약 10년간 로데오거리는 독특한 디자인의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 등을 구매하려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명품 가방이나 시계 등을 취급하는 점포와 최신 유행의 보세 의류를 파는 가게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10여 년 전 높아진 임대료 탓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하면서 젊은이의 패션1번지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퇴화하기 시작했다. 영세 상인이 떠난 자리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서 한동안 빈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최근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로데오거리 어디를 가나 ‘임대’ ‘RENT’ ‘For Lease’라고 써 붙인 상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진 느낌

3월 27일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한 일식당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최근 임대료를 낮춰 개성 있는 맛집과 중저가 온라인 쇼핑몰을 들이면서 상권 회복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특히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으로 향하는 대로변의 경우 새 주인을 기다리는 소규모 점포가 한 건물 건너 하나꼴로 눈에 띄었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90년대 초 자유분방한 오렌지족의 성지로,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각광받던 압구정동에 빈 상가가 을씨년스럽게 속살을 드러낸 채 새 주인을 찾고 있는 모습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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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에서 10년 넘게 부동산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0년 전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부터”라고 분석했다. 그는 “로데오거리 의류 매장을 돌아다니며 맘에 맞는 옷을 입어보고 실제 구매는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하는 현상이 보편화하면서 로데오거리가 퇴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로데오거리에서 판매하는 의류 중에는 환불이나 반품이 안 되는 것이 많아요. 반면 온라인에서 구매하면 얼마든지 환불이나 반품이 가능하잖아요. 갈수록 오프라인 의류 매장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거죠.”

실제로 로데오거리 의류 매장 가운데 길거리에 진열해 판매하는 제품의 경우 ‘환불, 반품 안 됨’이라고 써 붙여놓은 것이 많았다.

로데오거리에 빈 점포가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었다. 우려하는 쪽에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데다, 심리적 저지선마저 무너진 느낌이라고 얘기한다. 병원, 학원, 사무실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M공인중개업소는 우려하는 대열에 속해 있다.

압구정 대로변과 로데오거리에 빈 점포가 여러 개 눈에 띈다.

“세입자가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를 비워 무권리 점포가 돼도 새로운 세입자가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의류 매장 여러 곳이 문을 닫았는데, 최근에는 불황을 모른다던 병원조차 한번 문을 닫고 나가면 다시 열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멋쟁이’들의 해방구였던 압구정역 주변은 한때 성형외과가 밀집한 성형의 메카로 통했다. 그러나 가로수길이 활성화된 이후 서울지하철 3호선 신사역 주변으로 옮겨 간 듯한 느낌을 준다. 지하철역 내에 있는 병원 광고만 보더라도 압구정역은 입구에도 불 꺼진 광고간판이 여러 개인 데 반해, 신사역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을 탈 때까지 많은 성형외과 광고간판과 마주하게 된다.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창업해 성공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과거에는 대학병원 과장급 의사가 개원하면 대부분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병원 출신 의사가 개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뿐 아니라 의류, 신발, 액세서리 판매도 개인이 세를 얻어 장사하는 비율이 많이 낮아졌다. 대부분 대기업이 직영하는 대형매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부터 대기업 매장도 속속 철수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 식음료기업이 운영하던 P프랜차이즈의 경우 5층 전체를 매장으로 운영했지만 지난해 3개 층으로 규모를 줄였고, 그마저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얼마 전 폐업했다고 한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매장까지 문을 닫는 이유가 뭘까.

“대기업은 인건비만 건질 수 있으면 홍보 효과를 위해 매장을 열어둔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 매출은 계속 줄어드는데 인건비 같은 고정비는 늘어나자 대기업조차 손을 들고 있는 것이다.”

절반으로 떨어진 보증금과 임대료
1998년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모습. [강병기 동아일보 기자]

대기업이 매장을 닫는 이유가 인건비보다 높은 임대료 때문 아닌가.

“압구정 임대료는 이미 강남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고 비쌌을 때와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로데오거리 중심에 있는 99㎡ 크기의 1층 상가의 경우 원래는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800만 원을 받았지만 최근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450만 원으로 세입자와 계약했다고 한다. 보증금 1억5000만 원에 월세 600만 원을 받던 33㎡ 크기의 상가는 보증금 6000만 원에 월세 300만 원으로 조정됐다. 이면도로에 있는 46.5㎡ 크기의 상가도 보증금이 기존 7000만 원에서 4000만 원으로, 월세도 320만 원에서 220만 원으로 떨어졌다. 이들 점포는 과거 의류를 판매하던 매장이었지만 최근에는 밥과 술을 파는 음식점으로 바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로데오거리 인근에서 부동산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기대하는 쪽이다. 그는 “빈 점포 가운데 상당수는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해 오픈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몇 해 전까지 빈 점포가 늘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음식점이 속속 문을 열면서 멋의 거리에서 맛의 거리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압구정 대로변은 물론, 로데오거리에도 1층 빈 점포가 여럿 눈에 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지금 업종 전환이 한창이다. 명품 중심의 판매업종이 나간 자리에 독특한 음식을 파는 식음료업체를 운영하려는 새로운 세입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과거 로데오거리가 멋쟁이의 거리였다면,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맛보려는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거리로 바뀌고 있다.”

멋쟁이가 즐겨 찾는 거리

압구정 로데오거리에는 건물 1층에도 빈 상가가 종종 보였다. [구자홍 기자]
판매 매장이 줄고 식음료업종이 느는 이유가 뭘까.

“경기와 관련 있는 것 같다. 새 옷을 사려다가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그냥 있는 것을 입지’ 하며 참는 경향이 있는데, 끼니를 거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과거에는 로데오거리 주변에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직장인을 겨냥한 식당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임대료가 많이 낮아져 음식 장사로도 감당할 만하기 때문이다. 1, 2층 합해 월세 2000만 원을 받던 건물이 최근 월세를 대폭 낮추고 식당과 계약했다. 과거에는 건물에 냄새가 밴다며 식당을 꺼리던 건물주가 많았는데 이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도산공원 주변을 맛집·카페 거리로, 로데오거리를 패션 거리로 구분했지만 최근 들어 그 같은 구분이 무의미해졌다고 한다. 다만 도산공원 주변에 분위기 좋은 고급 레스토랑이 많다면, 로데오거리에 새롭게 들어선 음식점들은 족발과 삼겹살, 부대찌개, 순댓국, 꼬치구이 같은 저렴한 메뉴를 팔았다. 로데오거리 주변 한 부동산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압구정로데오역이 개통하면서 주변 건물 오피스 공실률도 낮아졌다”며 “오피스 근무자들이 로데오거리 주변에서 식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문화 거리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 중심의 패션 거리에서 식음료 중심의 맛의 거리로 변신하고 있는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압구정 로데오거리 상권은 청담동 명품 거리와 신사동 가로수길이 활성화하면서 위축됐는데, 압구정로데오역이 생긴 이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면서 “젊은이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 원장은 “특징 없는 상권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앞으로 어떤 테마로 젊은이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9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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