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일궈낸 정정용 감독의 ‘특별한 리더십’ 비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3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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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아레나 루블린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전 대한민국과 에콰도르의 경기에서 정정용 감독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대표팀이 에콰도르를 제압하면 이탈리아를 꺾고 결승에 선착한 우크라이나와 오는 16일 우치에서 결승전을 펼친다. 2019.6.12/뉴스1 © News1
11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아레나 루블린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전 대한민국과 에콰도르의 경기에서 정정용 감독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대표팀이 에콰도르를 제압하면 이탈리아를 꺾고 결승에 선착한 우크라이나와 오는 16일 우치에서 결승전을 펼친다. 2019.6.12/뉴스1 © News1
벼락 스타가 된 정정용 감독(U-20 축구 대표팀)이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린 건 2016년이다. 2017년 U-20 월드컵 출전을 준비하던 대표팀이 2016년 10월 아시아 대회에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승우(이탈리아 베로나), 백승호(스페인 지로나) 등 특급 선수들을 보유한 팀이었으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패배에 따른 책임으로 사령탑은 공석이 됐고, 무명 정정용 감독이 구원투수로 긴급 호출됐다.

임시 수장으로 팀을 이끈 정 감독은 그해 11월 수원컵 국제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불과 한 달 만의 반전이었다. 드라마틱했다. 선수 구성이 달라진 건 아니었고, 활용이 달랐을 뿐이다. 특히 개성 강한 이승우가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게 하고, 또 다른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게 했다. 서로 겉돌던 팀이 한 덩어리가 됐다.

정 감독은 이를 두고, 지시가 아닌 ‘이해시키는 것’의 힘이라고 했다.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있다. 2013년, 정 감독은 이승우에게 등번호 20번을 줬다. 스트라이커의 번호인 10번을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이승우는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정감독이 왜 그러냐고 했더니, 등 번호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답했다.

정감독이 과거 지도자처럼 “지시한대로 하라”고 했다면, 아마도 오해와 반발만 컸을 것이다. 정감독의 대처는 달랐다. “네가 9번(공격수 등 번호)을 달고 수비를 할 수 있겠니. 아니면 5번(수비수 등 번호)을 달고 공격을 할 수 있겠니. 20번을 달면 어디서든 뛸 수 있다.”

설명을 듣고 난 이승우는 “아, 그런 의미가 있네요”라고 바로 수긍했다. 나중에 정감독이 20번 달고 뛰는 게 어떠냐고 묻자 “(숫자가 커서) 조금 무겁긴 해요”라며 씩 웃었단다. 정 감독은 그 때 개성 강한 어린 선수들에게 이해(납득)시키는 과정이 중요한 걸 깨달았고, 그 경험을 통해 2016년에 반전 스토리를 쓸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승우에게만 해당된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승우 대신 이강인이 주축이 된 이번 U-20대표팀은 더욱 진화한 모습이다. 정 감독은 이해의 과정을 정서적 목적에만 한정하지 않고, 전술적인 부분까지 확장했다. 이번 대표팀이 경기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다. 전반에는 3-5-2 포메이션을 썼다가, 후반에는 4-3-3으로 전환한다. 매 경기 다른 전술을 가동했다.

정감독은 다채로운 전술을 위해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십 때 전술 노트를 나눠줬다. 포메이션을 왜 바꿔야 하는지, 또 포메이션에 맞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시켰다. 과거 지도자처럼 “시키는대로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포메이션이 같더라도, 포지션별 역할도 다르게 부여했으니 상당히 복잡한 공정이었다. 너무 복잡하면 실전에서 자칫 부작용만 크다. 하지만 이해를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 덕인지, 우리 대표팀은 오차 없이 움직였다.

그의 ‘이해’는 단순한 소통 방식이 아니다. 실질적인 내용을 동반한다. 무명이었던 정감독은 실업무대에서 선수로 뛸 때부터 대학원에 다니며 축구 이론을 공부했다. 박사과정 때는 스포츠생리학을 전공했다. 현란한 전술을 펼치고, 트레이닝 전문 코치와 함께 선수들의 컨디셔닝을 최적의 상태로 이끈 밑천이었다. 선수들은 증명이 돼야 진정으로 따른다. 그는 증명했다. 이름값을 앞세워 ‘지시’만으로 리더십을 행사한 이들보다 더 큰 성취를 한 이유다.

축구로만 한정할 일이 아니다. 정감독의 리더십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를 탐색중인 우리 사회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기성세대와 많이 다른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이 되면서, 조직마다 소통에 애를 먹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많다. 16일 새벽,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정감독의 ‘이해’도 함께 곱씹어보자.

윤승옥 채널 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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