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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작가 “난 뿔난 도깨비… 피 토하듯 새로운 길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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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작가 “난 뿔난 도깨비… 피 토하듯 새로운 길 찾아왔다”

김민 기자 입력 2019-05-27 03:00수정 2019-05-27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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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 갖는 원로작가 박서보
23일 작업실에서 만난 박서보 작가는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처음 갔을 땐 감탄했지만 2015년에는 ‘별것 아닌 걸 왜 좋아했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서양과 달리 내 작품은 정신성과 깊이가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뿔난 도깨비.’ 원로작가 박서보(88)는 16일 자신의 회고전 간담회에서 세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박서보의 회고전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는 그의 신작부터 1950년대 초기 작품까지 역순으로 소개한다. 약 70년의 여정을 작품 129점과 아카이브를 통해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반(反)국전 선언’ 직후의 초기 작품 ‘회화 No. 1’ (1957년·왼쪽 사진)과 가장 최근 작품 ‘묘법 No. 190227’(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는 단색화의 대표 작가이자 교육자, 행정가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1950년대 ‘반(反)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선언’을 이끈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홍익대 사단을 거느린 패권주의자’라거나 ‘서양 미술을 모방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회고전 소감이 어떤가.

“과거 작품이 전통의 양식적 해석이 많아 부끄러웠는데, 이번에 보니 시대의 산물이고 누구의 영향도 없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화 No.1’도 오랜만에 전시됐다. ‘잭슨 폴록’의 모방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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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폭격을 맞은 종로 거리 부서진 철근 아래를 걸어가며 나도 모르게 그런 작품이 나왔다. 그릴 때 잭슨 폴록은 몰랐다.”

―구체적 형상을 표현했나.

“형상에서 추상이 된 거다. 안료 가루를 기름에 섞어 소주병으로 밀어 물감을 만들었다. 이게 현대 미술의 출발이었다. 그때 김창열 윤명로 등 함께한 작가들이 ‘안국동파’라고 놀림을 받았다.”

―현대 미술의 집단화가 왜 중요했나.

“국제화가 중요했다. 일본이 현대 미술전으로 해외 진출을 했고 우리도 질 게 없다 생각했다. 남들은 내가 정치를 했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했다.”

―잭슨 폴록을 정말 몰랐나.

“그림을 잘 보면 밑색이 보인다. 자주 다시 그려 ‘땜빵’한 흔적도 있다. (‘No. 1’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 시리즈의 첫 그림이기에 그렇게 붙였다. 유사성 지적은 자유지만 당시 정보가 없었다. 나는 보수 정권에서는 혁신가, 좌파 정권에선 우파 퇴물 취급을 받는다. 온갖 역경 아래 ‘현대 미술 가치관 집약 운동’을 했고 그것이 우리나라 미술을 만들었다.”

―‘묘법’은 사이 트웜블리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연필을 썼다고 비슷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트웜블리는 즉흥적 낙서를 표현했고 나는 행위의 반복, 자연과의 합일을 표현했다. 정신이 다르다. 트웜블리는 작품도 순식간에 완성한다. 물론 재주 있는 친구다. 죽기 전에 2인전으로 겨뤄 보고 싶다. 내 신작은 수신(修身)에 ‘치유’ 개념까지 넣어 트웜블리는 게임이 안 된다.”

―‘수신’이 그림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왜 그런가. 이번 신작도 남들이 먼저 ‘완전히 수신과 치유를 동시에 잡는다’고 이야기한다. 화이트큐브 디렉터, 일본 평론가 모두 내 그림이 좋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나 개념적으로 접근해 ‘선만 긋고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단색화가 급조된 이론이라는 비판에 대한 생각은….

“절대 그렇지 않다. 미니멀리즘의 한국적 해석이 아니라 나를 전부 비워 내는 것이다. 서양은 개념적으로 접근하고 우리는 사상적으로 접근하는 것인데 구별을 못 한다.”

―예술 작품의 독창성은 어떻게 생긴다고 보나.

“큰 흐름에서 자신만 가능한 길을 찾아야 한다. 평론가 이일이 나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작가’라 했는데, 우리 사회가 발전해 이제 나 같은 사람은 필요 없다. 나폴레옹이 그 시대에 안 나왔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 앞장서야 했던) 시대의 산물이고, 화살받이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 나처럼 시대가 명확하게 바뀐 작가가 없다. 피를 토하듯 새로운 길을 찾아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박서보 작가#뿔난 도깨비#국립현대미술관#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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