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정진택 고려대 총장 “AI시대 이끄는건 결국 사람… 기술-윤리 갖춘 융복합 인재 키울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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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인터뷰에서 인문학에 기반을 둔 교육을 유독 강조했다.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공선사후’ 정신에 충실한 도덕적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시대에 기술의 악용을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사람’ ‘융합’ ‘다양성’이 고려대 114년 역사상 첫 공과대 출신 총장의 화두였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인터뷰에서 인문학에 기반을 둔 교육을 유독 강조했다.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공선사후’ 정신에 충실한 도덕적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시대에 기술의 악용을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사람’ ‘융합’ ‘다양성’이 고려대 114년 역사상 첫 공과대 출신 총장의 화두였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000년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59)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00년생,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의 특성에 맞는 교육이 아니라면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로봇, 생명과학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에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밀레니엄 세대는 정 총장의 40년 후배다. 그는 고려대 114년 역사상 첫 공과대 출신 총장이다. 2월 28일 제20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2일 고려대 본관 인촌챔버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과 ‘융합’, 그리고 ‘다양성’을 강조했다. 》

―밀레니엄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가.

“작년 말 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담당자가 쓴 책에서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는 문구를 봤다. 책의 내용은 신입사원이 기존 조직에 순응하는 게 과거엔 순리였지만 지금은 몇 안 되는 신입사원이 조직을 흔든다는 것이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젊은이들에 대한 분석이 절실하다. 밀레니엄 세대는 조직보다 자신에게 충성하고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의사 표현이 분명하고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이런 세대를 교육해야 하는데 기존 교육체계가 맞는지, 교육기법이 적절한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고민은 동아일보의 보도와 맥락이 닿아 있다. 올 초부터 ‘2000년생이 온다’ ‘부장님처럼 살기 싫어요. 청년들의 신(新)성공법칙’ 등 젊은 세대를 집중 분석하는 시리즈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세대이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특성에 맞춰 교육하지 않으면 ‘비싼 등록금 냈는데 배울 게 없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대학이 제 기능을 못 한다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세대 차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그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4차 산업혁명에 맞게 교육해야 한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1학년 교양교육부터 인문학에 기반을 두도록 바꿀 것이다. 교양교육을 맡는 교무처 산하 기초교육원을 본부 소속 교양교육원으로 승격 개편해 학생들이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다양한 교양과목을 만들려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기계공학도도 인문학을 바탕에 둬야 한다. 학생들의 기업체 인턴을 가급적 해외에서 하도록 할 것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과대 출신인데 인문학을 유독 강조한다.

“총장이 되면서 내세운 슬로건 중 하나가 ‘휴먼 KU(고려대)’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기술이라도 그걸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아무리 엄청난 기술이라도 사람으로서 기본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채 악한 의도를 갖고 만들면 사회 전체에 후폭풍이 매서울 것이다. 그래서 취임사에서도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을 강조했다. 그 정신에 충실한 도덕적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고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남을 돕는 것이 정의의 시작’이라고 했다. 로마가 1000년 이상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 바로 도덕적 인간을 많이 배출한 데 있다고 믿는다.”

―그게 미래 인재상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나.

“과거 산업화 시대엔 필요한 기능을 갖춘 표준화된 인간을 대량 배출하는 게 교육의 기능이었다. 하지만 미래엔 인간의 주관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할 수 있는가’ 여부가 아닌 ‘왜 해야 하는가’가 중요해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기술이 아닌 윤리를,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을, 표준화가 아닌 맞춤형의 시대정신을 교육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리더는 뭔가를 할 기술이나 능력을 갖추는 것보다, 그런 능력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고려대는 단편적 지식이나 일방적인 신념을 가진 인재가 아닌 통합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로 윤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그 윤리성은 ‘인류에게 얼마나 이로운가’의 가치로 결정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AI 시대에도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그 대상도 사람이다. 도덕적 가치가 결여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인문계와 이공계의 융합, 통섭을 강조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하나.

“사람 중심의 공유 가치 창출이란 측면에서 그렇다. 대학의 주된 역할이 과거엔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복잡한 사회의 요구에 융합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인문계와 자연계, 문학과 공학, 윤리와 예술의 피상적 융합이 아닌 각 영역 자체가 해체돼 재구성되는 통합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학생들은 그런 다양한 지식이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 작용해 미래의 문제 해결에 기여할지 고민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고려대에서 시도하는 융합, 통섭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국내 최초로 문과대에 속한 심리학과를 AI, 뇌과학 분야와 융합해 심리학부로 분리, 독립시킬 계획이다. 2021학년도부터 심리학부 신입생을 뽑을 것이다. 그 학생들은 AI, 뇌과학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공학, 의학 등 모든 분야와의 융합 연구에 최적화된 교과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기존 학문체계 중심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 중심의 맞춤형 교육이 될 것이다. 융·복합적 인재,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롤모델이 될 것이다.”

앞서 정 총장은 취임사에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고 학과의 이익을 앞세우며 네 편, 내 편 따지는 편협한 자세로는 초연결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은 여러 학문이 연결될 때 그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의 모든 학생이 수강해야 하는 ‘자유-정의-진리’ 과목도 융합이 목적인가.

“학부 공통 교양과목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주제를 깊이 탐구하게 해 의견과 관점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게 목표다. 강의 방식도 기존 수업과 다르다. 동영상 강의를 먼저 본 뒤 강의실에서는 교수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교수의 질문에 답하며 토론하는 방식이다.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과목이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치는 창의에서 나온다. 창의는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찾아내거나, 이미 존재하는 생각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조합해 내는 것이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론과 원리를 앞장서 개발해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입시 단계에서부터 창의적 인재를 선발해야 할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예측 불가능의 시대엔 다양성이 경쟁력이다. ‘고려대생은 전부 ○○를 잘한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뮤지션도 있어야 하고, 대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모범적으로 생활해 내신이든 수능이든 좋은 성적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에 앞장설 수 없다. 자기 주도적으로 학업, 인생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한다. 특정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그게 동기 부여가 돼야 한다. 그런 창의적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면 좋겠다.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경험이 입시 평가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취임식에서 학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저장,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재정이 필요한 일이다. 전공 융합 등 다른 계획에도 많은 돈이 들어갈 텐데….

“등록금은 10년째 동결된 상태다. 기부금, 발전기금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한국은 선진국처럼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기부를 유인하는 방법은 기부자에게 세제 혜택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다른 대학들과 함께 세제 관련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겠다. 또 대학 스스로 창업을 적극 지원해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쉽지는 않다. 선진국에서도 그렇게 해서 큰 성과를 올린 대학은 몇 개 안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익 창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앞서 기자 간담회에선 동남아 등에 고려대의 교육 콘텐츠를 수출하겠다고 했는데….

“동남아나 중국 현지 대학에 고려대의 커리큘럼을 전수하고 정착시켜 공동 캠퍼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수익을 올리게 되면 우리 학생들도 혜택을 볼 것이다. 중국의 경우 팽창성이 크다. 대도시의 유명 대학이 중국 내륙에 분교를 설치할 때 고려대의 교과과정을 전수하거나 교수들이 가서 강의를 할 수 있다. 대학은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대외협력, 산학협력, 국제협력이 중요하다.”

○ 정진택 총장 주요 약력

△ 고려대 기계공학과 졸업
△ 미국 미네소타대 박사(기계공학)
△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
△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공과대학장, 테크노콤플렉스원장,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 한국유체기계학회장(2017년)
 
인터뷰=이명건 사회부장/정리=조동주 djc@donga.com·김정훈 기자
#고려대학교#정진택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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