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서 어긋나는 농약 성분 검출되면 농산물 폐기? 농민들 반응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3일 15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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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포곡읍 상원농장의 한 비닐하우스에선 12일 오후 호박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호박의 꽃가루받이(수분)를 위해 풀어둔 꿀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비닐하우스 안을 날아다녔다. 농장주 이상원 씨(80)는 “처음엔 꿀벌에 많이 쏘였는데, 지금은 (꿀벌들도) 주인을 알아보는지 안 쏜다”라며 웃었다.

이 씨가 비닐하우스에 꿀벌을 들인 것은 몇 해 전이다. 그 전엔 호르몬제와 붓을 사용해 인공적으로 꽃가루받이를 시켰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농약 허용물질목록관리(PLS)’ 제도에 따라 호르몬제를 포함한 농약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지자 꿀벌을 활용한 자연 친화적인 꽃가루받이 방식을 택했다.

이 씨는 해충을 잡기 위해 농약을 쓸 때도 혹여나 PLS 제도에 어긋날까봐 농협이 무료로 배포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본다. 어떤 작물에 무슨 농약을 쳐야 하는지, 농약을 몇 배로 희석해 농작물의 어느 부위에 뿌려야 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를 어겼다가 허용치를 초과한 농약이 농산물에서 검출되면 당장 판매한 농산물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 씨는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많이 쓰는 게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니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 ‘토양 환경이 곧 건강’ 농약 기준 강화

PLS는 농산물마다 써도 되는 농약의 종류와 양을 정해두고, 이 기준과 다른 농약 성분이 0.01ppm만 나와도 해당 농산물을 회수해 폐기하는 제도다. 기존엔 정해진 기준이 없는 경우 비슷한 농산물의 기준을 준용해 부합하면 통과시켰다. 예컨대 더덕에 사용하게끔 등록되지 않은 농약이 더덕에서 검출되면 그와 비슷한 뿌리채소 중 기준이 가장 낮은 도라지의 기준에 따라 판정하는 식이었다.

0.01ppm은 농산물 1㎏에 잔류 농약 0.01mg을 뜻하는 극미량이다. 쌀에 비유하면 80㎏ 짜리 25가마니 중 쌀알 1개에, 화물로 따지면 1t 트럭 100대에 실은 물품 중 1g에 해당한다. 사실상 등록되지 않은 농약은 사용 금지라고 볼 수 있다.

식약처는 2016년 12월 밤과 아몬드 등 견과류와 참깨 등 유지종실류, 바나나 등 열대과일류에 우선 PLS 제도를 적용했다. 올해 1월 이후엔 모든 농산물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농약 사용을 이처럼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는 농약의 화학성분이 토양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막고, 궁극적으로는 먹거리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농약의 화학성분은 당장은 해충을 쫓거나 잡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정량 이상 쓰면 농산물에 그대로 남아 인체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등 독성으로 작용한다. 농약 성분이 토양 내 유기물을 소멸시켜 땅을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농약이 오염시킨 토양 환경은 다시 깨끗해지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 2017년 8월 ‘살충제 잔류 계란’ 파동 땐 살충제를 쓴 적이 없다는 산란계 농장 2곳의 계란에서 금지물질인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이 기준치보다 많이 나왔다. 국내에서 1979년 이후 DDT 판매가 금지된 점을 감안하면 거의 40년 전에 뿌린 DDT 성분이 다 분해되지 않은 채 토양에 남아 있다가 산란계의 모이를 오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PLS 제도는 우리 세대의 먹거리 안전뿐 아니라 미래의 환경을 고려한 제도인 셈이다.

● “친환경 먹거리에 소비자도 만족”

농민들이 PLS 제도를 따르지 않았다가 허용하지 않은 잔류 농약이 검출되면 그 사실을 식약처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회수 및 판매중지 조치를 한다. 고농도 농약을 반복해서 치면 농약관리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거나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형사 고발까지 당할 수 있다.

용인시 포곡농협은 매주 관내 농산물 10건을 무작위로 수거해 농약 잔류검사를 벌이고 있다. 농민 김교진 씨(80)는 “지금은 무작위 검사에 걸릴까봐 다들 농약 사용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라며 “애초에 ‘나와 내 가족이 먹을 농산물’이라고 생각해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선 농협의 농약 사용 교육을 3차까지 이수하고 현장 검사를 통과하면 농협 하나로마트 내 ‘로컬푸드매장’에 농산물을 납품할 자격을 얻는다. 12일 포곡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매장에 진열된 상추와 오이 등 농산물엔 농장주의 얼굴 사진과 휴대전화 연락처뿐 아니라 잔류농약 정밀 검사표가 일일이 부착돼 있었다. 소비자 최순경 씨(56·여)는 “농약검사가 철저히 이뤄지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안심하고 구입한다”며 만족해했다.

이 때문에 PLS 제도를 반기는 농민이 적지 않다. 예전엔 농약을 적절한 수준으로만 치고 싶어도 정확한 양을 몰라 무분별하게 사용했는데, PLS 제도 도입과 함께 교육이 강화된 후 농약을 사는 데 쓰는 비용 자체가 줄기도 했다. 또 로컬푸드매장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어 농가들의 매출도 늘었다. 김미희 용인시 농업기술센터 북부농업기술상담소장은 “로컬푸드매장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민들은 도매시장에 팔 때보다 수입이 평균 1.3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 깐깐해진 수입농산물 검사 ▼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유해물질분석과 실험실. 미국산 레몬, 중국산 말린 표고버섯, 영국산 차(茶) 등 수입 농산물이 각기 다른 검체수거 봉투에 담겨 있었다. 며칠 전 국내에 들어와 서울 시내 보세창고에 보관 중인 제품들로 잔류농약 검사를 앞둔 것들이다.

연구원은 검사를 위해 가장 먼저 농산물을 분쇄했다. 이를 병에 담아 정제 및 농축 과정을 거쳐 잔류허용 기준을 초과한 농약이 남아있는지 확인한다. 잔류허용 기준은 씻지 않고 평생 먹어도 안전한 수준이다. 식품의약품약안전처 관계자는 “적합 판정을 받아야만 유통이 가능하며, 부적합 농산물은 전량 폐기되거나 수출국으로 반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모든 농산물을 상대로 ‘농약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PLS)’를 시행하면서 수입농산물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가 더 깐깐해졌다. 시행 이전에는 잔류허용 기준이 없는 농약이 나와도 적합 판정을 받을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측정 가능한 최소 농도(kg당 0.01mg)만 초과해도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사실상 아예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야 적합 판정을 받는 것이다.

PLS 기준에 맞추려면 농약 사용을 최소화해야 해 토양 오염을 막는 효과도 있다. 오염된 토양은 거기서 자란 농산물과 축산물을 거쳐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PLS와 유사한 기준을 두고 있는 이유다.

PLS 시행 3개월 만에 부적합 수입농산물들이 잇달아 퇴짜를 맞았다. 1월 중국산 양송이에서 살균제 ‘클로로탈로닐’이 kg당 0.04mg 검출돼 수입이 취소됐다. 이는 허용치(kg당 0.01mg)의 4배다. 2월 태국산 바질에서도 기준치의 1628배에 달하는 클로로탈로닐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3월 호주산 렌틸콩, 이달 초 중국산 생강에서도 잔류허용 기준이 없는 농약이 잇따라 검출돼 수입이 막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을 처방받은 대로 먹어야 하는 것처럼 농약도 정해진 종류와 방법대로만 사용하도록 하는 게 PLS의 취지”라며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약 오남용에 따른 생태계 위협을 줄이려면 PLS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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