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세상에 ‘공짜 일자리’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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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19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 커머스시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기공식장은 잔칫집 같았다. SK가 2025년까지 16억7000만 달러(약 1조8800억 원)를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일자리 2000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니,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의 말처럼 “조지아 주민들에겐 신나는 날”이었다. 무대에 오른 미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SK 경영진은 덕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갈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밝은 미래를 상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산업 및 무역 정책의 사령탑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미국이 기업 투자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줬다. 조지아주까지 먼 길을 온 그는 기공식 행사장에 1시간 넘게 머무르며 첫 삽을 같이 떴다. 로스 장관은 “SK 투자가 미국이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로스 장관은 의미심장한 말도 꺼냈다. “자동차 산업 자체는 성숙한 시장일 수 있지만 전기차는 그렇지 않다. 유사한 기술적 전환이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양산업과 미래산업이 교체되는 기술적 전환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한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막대한 경제적 인센티브가 동원된 북미 도시들의 ‘아마존 제2본사 유치 경쟁’이나 집값 상승과 교통 혼잡, 세금 지원을 우려하는 이들의 ‘아마존 유치 반대운동’은 미래 일자리 전쟁의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지난해 11월 SK가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투자를 발표했을 때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과 캐나다 5곳의 자동차 생산라인 폐쇄를 예고했다. 산업의 주도권이 바뀔 때 어느 업종은 사람이 필요 없어서 고민이고, 다른 업종은 필요한 인력이 없어서 발을 구른다. 숙련 기술자를 구하지 못해 비어 있는 미국의 일자리가 600만 개나 된다. 이런 인재를 길러내 급성장하는 혁신 기업을 끌어들이는 지역이 미래 일자리 전쟁의 승자가 될 것이다.

조지아주는 이런 성공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조지아주가 제시한 공장 터 제공, 세제 혜택 등 경제적 인센티브는 다른 후보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인건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양질의 인력 확보”라며 “조지아주의 인력 지원 정책에 특히 감동했다”고 말했다. 조지아주는 1967년부터 ‘퀵 스타트’ 프로그램을 가동해 투자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을 무상으로 교육해서 제공하고 있다. 그간 100만 명이 넘는 조지아주 주민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1970, 80년대 대학생들은 졸업하면 대체로 쉽게 취업했고, 때가 되면 승진했다. 기업들의 ‘문어발 투자’ 덕분에 일자리는 거저 생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1990년대 후반 세계화와 자동화 시대로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사람이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되면서 ‘공짜 일자리’ 시대는 막을 내렸다.

공짜 일자리 시대를 즐겼던 기성세대들은 학교를 나와도 갈 곳 없는 청년들의 절박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기업이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는 ‘낙수효과 실종’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떠나는 일자리를 붙들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끌어안기 위해, 청년들이 학교를 나와 미래 일자리로 직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 일자리는 더는 공짜가 아니다. ‘SK’라는 트로피를 거머쥔 조지아주 공무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sk이노베이션#조지아주#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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