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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섬나라 쿠바서 노사연 ‘만남’ 함께 부르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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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섬나라 쿠바서 노사연 ‘만남’ 함께 부르는 이들

강홍구기자 입력 2019-03-22 15:20수정 2019-03-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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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로니모’의 전후석 감독.
“조국은 마음에 시를 불어넣는 심장박동이다. 아름다움이자 사랑이고, 작품이고 위대한 업적의 결정체다.”

―헤로니모 임 김의 시 ‘조국(homeland)’ 중(번역)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에서 가수 노사연의 유행가 ‘만남’을 함께 부르는 이들이 있다. 일제의 압제에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쿠바까지 흘러들어 온 한인(韓人) 후손이다. 쿠바 전역에 1000여 명이 사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지금도 함께 모여 한국어를 배우고, 애국가를, 고향의 봄을 부른다. 1921년 쿠바 땅에 첫발을 디딘 이후 100년이 다 되도록 한인 사회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숨은 영웅의 노력이 있었다. 고(故) 헤로니모 임 김(Jeronimo Lim Kim·한국명 임은조)이 주인공이다.


● 쿠바 한인 사회 재건을 위해 팔 걷고 뛴 헤로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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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쿠바에서 태어난 헤로니모의 삶은 곧 쿠바 한인의 역사다. 그의 아버지 임천택은 경기 광주 출신으로 두 살 때인 1905년 홀어머니 품에 안겨 멕시코 에네켄(용설란) 농장으로 떠났다. 쿠바 현지에서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낸 임천택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인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기도 했다. 백범일지에도 이름이 나온다.

9남매 중 장남인 헤로니모는 한인 최초로 아바나대 법대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그곳에서 대학 동기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된 헤로니모는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과 함께 혁명 전면에 선다. 이후 식량산업부 차관까지 올랐고 1967년에는 북한에 다녀오기도 했다.

헤로니모가 본격적인 쿠바 한인 사회의 리더 역할을 한 건 1995년부터다. 광복 50주년 세계한민족축전에 초청돼 한국 땅을 밟은 헤로니모는 쿠바 내 한인 사회 재건을 결심한다. 철학과 교수 출신 여동생 마르타 임 김(한국명 임은희)을 도와 ‘쿠바의 한인들’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평소 한국어를 배워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따르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헤로니모는 선교사들을 지원해 한국어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쿠바 한인들이 만남이나 고향의 봄 등의 노래를 알게 된 건 이때부터다.

헤로니모의 가장 큰 숙원은 쿠바 내 한인회 설립이었다. 공식 한인회 설립을 위해선 한인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는 정부의 요청에 헤로니모는 자신의 차를 몰고 쿠바 방방곡곡을 돌며 한인들을 만났다. 현지 신문에 광고까지 내가며 열정을 쏟았다. 쿠바 이주 80주년인 2001년 한인들이 첫발을 들였던 마나티, 초기 정착지인 엘볼로 지역에 한인들의 이주와 정착을 알리는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두 기념비는 모두 조국을 그리는 마음에 서쪽을 향해 지었다.

2003년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한 차례 더 한국 땅을 밟은 헤로니모는 2006년 80세의 나이로 쿠바에서 눈을 감았다. 쿠바 이주 98주년인 현재, 그의 숙원이었던 한인회 설립은 쿠바 정부의 불허로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 영화 ‘헤로니모’도 국내 개봉 예정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헤로니모의 이야기를 곧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미동포 전후석 감독(35)의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가 올해 국내 개봉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 중이기 때문이다. 90분 길이의 이 영화의 배급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KOTRA 뉴욕지부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전 감독이 난데없이 영화 제작에 뛰어든 건 2015년 12월 쿠바 배낭여행이 계기가 됐다. 현지 가이드로 헤로니모의 딸 페트리시아 임을 만난 것. 예기치 않게 헤로니모의 아내, 형제 등과 지인까지 만나게 된 전 감독은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영화화를 결심했다. 전 감독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영화 촬영 비용을 모은 그는 쿠바에만 네 차례 가는 등 4개국 17개 도시를 돌며 영화를 찍었다. 쿠바 한인부터 선교사, 역사학자 등 70여 명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법륜 스님, 전 메이저리거 박찬호 등도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배급 협의를 위해 최근 입국한 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디아스포라(조국 밖에 퍼져 사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도 800만 명의 재외동포가 한반도 밖에 흩어져 살고 있다. 통일을 말하는 시대에 재외동포를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한국인의 정의를 모두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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