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임숙]요즘 것들, 90년대생이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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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멘토링을 받으라고 보냈다가 아주 망했어요.”

한 대기업 임원이 취업준비생 딸 이야기를 꺼냈다. 서울의 주요 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딸에게 회사의 여성 팀장을 소개했다고 한다. 이 팀장은 딱 부러지는 성격만큼이나 일도 잘하고, 1년의 연수기간에 영국에서 경영학석사도 따왔다. 하지만 팀장을 만나고 온 딸은 “민간기업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팀장이 털어놓은 회사 생활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밤늦게까지 회사 일에 매달리고 개인 생활이 1도 없지만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아버지 세대 삶의 축소판’이자 ‘절대 따라 하고 싶지 않은 삶’이었던 것이다.

딸은 1994년생이다. 회사에서 딸과 비슷한 또래, 비슷한 생각을 하는 후배들을 겪어 봤지만 피붙이의 반란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고 했다.

1990년대생들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되면서 기성세대 직장인들은 ‘문화쇼크’를 겪고 있다. 어느 대기업 임원이 지난해 말 자기계발비가 남아 후배들에게 필요한 책 2권을 사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하겠다 했더니 30여 명의 책상 위에 올려진 책들이 죄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거나 ‘90년생이 온다’였단다.

‘하마터면…’의 작가 하완 씨는 이렇게 적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면서 이용하고 착취한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하 씨는 어느 날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90년생…’의 작가 임홍택 씨는 한 은행 연수담당자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 이 연수담당자는 집단교육 중에 한 신입사원이 술을 반입해 마신 걸 적발했다. 엄벌 속에 싹틀 동료의식을 기대하며 같은 방 동기 10명을 얼차려 시켰다가 나중에 한 신입사원으로부터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 나는 잘못도 안 했는데 왜 나까지 벌을 주나”라는 말을 듣는다.

기성세대 눈에 이런 후배들은 ‘외계인’이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스승에게도 대든다”는 말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했다지만 요샌 해도 너무한다는 거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기 전부터도 “회식 날짜를 일방적으로 정했으니 개인 약속이 있는 저는 빠집니다”, “제 미래가 (당신과 같은) 임원이 되는 거라면 저는 안 할 겁니다”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백전노장들의 뒷목을 잡게 한다. 한 대기업에선 해외 단기연수에 나선 임원이 쇼핑을 하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 신입사원에게 카드를 건네며 대신 처리해 달라 했다가 “제가 비서는 아니지 않나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 문제적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직관리의 문제도 있지만 이 세대가 결국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혁신가이자 주요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어느 대기업 계열사는 지난해 회사 임원진과 중견사원을 대상으로 외부 강사를 초빙해 ‘요즘 것들’이라는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세대를 이미 끌어안은 사업가들은 성공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많은 사람이 바링허우(80년대생), 주링허우(90년대생)가 문제라고 한다. 이들에게 문제는 없다. 문제는 우리”라고 갈파했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은 “주링허우들은 자의식이 강하고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충만하다. 이 점이 놀라운 상상력으로 이끈다”고 했다.

때로 뒷목 잡게 하지만 본질적으로 혁신가인 요즘 것들은 어느 순간 조직 내 이해의 범위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2022년이면 2000년대생들이 온다. ‘개’, ‘존’ 같은 접두어를 달고 살고, 친구 전화번호는 몰라도 메신저로는 연락하고, 어느 세대보다 발칙하고 창의적일, 딱 내 딸 같은 애들 말이다. 이런, ‘개’두렵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1990년대생#문화쇼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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