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가고 기계가…모르면 햄버거도 못 먹는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1일 15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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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앞 야근을 할 때 자주 가던 패스트푸드점에 얼마 전 무인 주문대가 생겼다. 입구에서부터 꽤 위압적인 덩치를 자랑한다.

나는 이런 ‘키오스크’가 익숙한 세대인데도, 늘 먹던 세트 메뉴를 찾고 주문하는 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우선 큰 화면 속 글자와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 읽었다. 원하는 메뉴를 찾고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가 손톱 끝을 세워 보았다가 하며 연신 화면을 눌러댔다. 끝난 줄 알았더니 웬걸. 사이드메뉴며 음료를 또 선택하란다. 마침내 카드를 삽입하라는 문구가 나왔다. 신용카드를 앞으로 넣었다 뒤집어 넣었다 했다. 그제야 간신히 주문번호와 영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손가락 두 개만한 종이쪽지에 쓰인 번호와 안내 화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며 내 순서를 기다렸다. 목이 슬슬 아플 때쯤, 비로소 저쪽에서 사람이 나타나 말한다. “삼백팔십육 번 고객님,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몇 해 전부터 고속버스 유인 매표소가 크게 줄었다.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휴대폰 앱으로 편리하게 승차권을 살 수 있어서다. 종이 승차권 없이 모바일 승차권으로 탑승할 수 있으니 좋아진 것이라고들 했다. 실제로 나는 휴대폰으로 고속버스의 잔여 좌석을 확인하고 미리 예매를 해 두었다가 시간에 딱 맞춰 고속터미널에 간다.

그렇지만 이 일련의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선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 무선인터넷이나 데이터망에 접속할 줄 알아야 하고, 통신비용을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법을 알아야 한다. 휴대폰의 작은 글자를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작은 화면에서 더 작은 작은 자판을 틀리지 않고 눌러 출발지와 목적지를 선택한 다음 역시 새끼손톱만한 ‘검색’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한다. 화면을 ‘스크롤’할 줄도 알아야 한다. 신용카드가 있어야 한다. 휴대폰에서 신용카드로 결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모바일 승차권을 화면에 띄울 줄 알거나 고속터미널의 무인 발권기에서 신용카드로 무인발권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할 줄 모르면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만석 아닌 시간대의 버스표를 뒤늦게 현장에서 구매한 다음,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눈이나 손이 불편해도 마찬가지일 터다. 버스 한 번 타기가 이렇게 어렵다.

기차도 별반 다르지 않다. 휴대폰 코레일 앱이나 홈페이지로 예약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좋은 자리를 고를 수 있다. 그렇지만 앱 설치, 회원가입, 본인인증, 신용카드 혹은 휴대폰 결제를 할 수 없다면 역에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줄을 서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문제는 휴대폰,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이나 이런 앱을 능숙하게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줄을 아무리 서도 애당초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좋은 자리를 미리 고르는 것도 ‘온라인 쿠폰’으로 할인을 받는 것도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쓸 줄 알아야 가능하다. 이것이 어려운 사람들은 어딜 가든 한참을 기다리거나,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남에게 부탁해야 한다. 기차역에서 어르신의 발권을 도와드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표 한 장을 사려고 노인들이 생면부지의 젊은이에게 돈이나 신용카드나 개인정보가 잔뜩 담긴 휴대폰을 건네며 부탁을 해야 하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심지어 4900원짜리 햄버거 세트도 그렇게 고생스럽게 사라니!

세상에는 몇 살이 되어서든 배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햄버거 사기가 그런 배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일까? 새해 일출 보는 버스 한 번 타 보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 최첨단이니 편리함이니 하는 말로 적당히 포장할 수 있는 문제일까?

햄버거 사기가 어려우면 분식집에 가라고 할 일이 아니다. 터미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라 할 일이 아니다. 아예 어떤 서비스를 이용조차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는 변화는 결코 발전이 아니다. 효율과 첨단의 탈을 쓴 약자 배제일 뿐이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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