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박테리아, 정면대결 대신 힘빼서 잡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내성균 해결책 ‘항독성제’ 급부상

코와 호흡기계통에 주로 존재하는 황색포도상구균이다. 한국에 존재하는 황색포도상구균의 60∼70%가 항생제인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지고 있다. 성균관대 항균내성치료제연구소 제공
코와 호흡기계통에 주로 존재하는 황색포도상구균이다. 한국에 존재하는 황색포도상구균의 60∼70%가 항생제인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지고 있다. 성균관대 항균내성치료제연구소 제공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슈퍼박테리아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항생제 내성 인식주간’이던 지난달 12∼16일 각국에서 슈퍼박테리아 감염 현황과 대응 상황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다. 영국 국가항생제 내성 대책위원회 보고서는 2050년에는 암 사망자(810만 명)보다 많은 1000만 명이 슈퍼박테리아로 목숨을 잃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슈퍼박테리아를 물리치기 위해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항생제를 만드는 데는 평균 개발 기간이 10년 걸리며, 개발비도 약 8000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내성을 가진 세균이 금세 나타나 약물이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만다.

항생제는 세포벽이나 세포막, 단백질이나 유전물질인 핵산 합성 등을 방해하는 네 가지 방법으로 세균을 죽이는 물질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찾아 1943년 최초의 항생제로 사용되기 시작한 페니실린은 세포벽의 합성을 저해하는 물질이었다. 하지만 페니실린을 포함해 인간이 개발한 거의 모든 항생제에 대해 완전히 내성을 가진 세균들이 등장했다.

이혁민 고려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점차 약을 써도 낫지 않는 환자가 나온 뒤 내성균이 나타났다고 완전히 공인받는 데 짧으면 1∼2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내성균이 공인되지 않은 항생제는 1950년 발견됐지만 독성 때문에 사용이 금지됐던 세포막합성저해제 ‘콜리스틴’뿐이다. 이후 위급한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콜리스틴도 2015년 11월 중국에서 처음 내성균이 보고된 뒤 점차 그 효과가 무뎌지고 있다. 해외 거대 제약사들도 항생제 개발에서 손을 떼는 추세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항생제는 16개뿐이다. 같은 기간 FDA 승인을 받은 약물(447개)의 약 3.5% 수준이다.

이 때문에 내성균의 해결책으로 항독성제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항독성제는 세균을 죽이지 않고 독성만 낮춰 그 힘을 약하게 만든다. 김경규 성균관대 항균내성치료제연구소장은 “외부에서 물질이 체내로 들어오면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며 “세균이 만드는 독성물질을 낮추거나 없애면 면역세포들이 세균을 퇴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렉카 아르야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황색포도상구균을 대상으로 항독성물질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렉카 아르야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황색포도상구균을 대상으로 항독성물질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김 소장 연구진은 신선초 추출물에서 찾은 잔소안제롤이 슈퍼박테리아의 일종인 황색포도상구균이 독성인자를 합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난달 15일 ‘의약화학저널’에 발표했다. 황색포도상구균 등의 세균은 체내에서 면역세포인 호중구에 대항하기 위해 독성인자를 생성해 공격한다. 이번에 찾은 잔소안제롤은 황색포도상구균이 독성인자를 만들 때 진행되는 신호체계의 핵심 단백질을 망가뜨린다. 실제로 이 균에 감염된 꿀벌부채명나방에 잔소안제롤을 주입했고,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확인했다.

김 소장은 “독성을 완전히 잃은 세균을 면역세포들이 쉽게 없앨 수 있게 된 것”이라며 “항독성제는 내성 문제를 최대한 피해갈 수 있는 슈퍼박테리아 대처법”이라고 말했다. 항독성제는 항생제와 달리 세균을 죽이려 들지 않기 때문에 내성 발생 확률이 낮다. 또 독성에 대한 내성이 생기더라도 전체적으로 균이 약해졌기 때문에 면역력을 높여주면, 다소 강한 균이 발생해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항독성제도 단점은 있다. 일반적으로 면역력이 극도로 약한 환자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다. 김 소장은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빠르게 균을 없애는 게 관건”이라며 “세균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독성인자를 동시에 막을 수 있다면 면역력을 회복할 시간을 더 벌어 치료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은 “기존 항생제 개발과 함께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슈퍼박테리아에 대항할 무기들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twok@donga.com
#슈퍼박테리아#항독성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