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4〉인생 2막은 크루즈선 선장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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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삶의 모래시계가 끝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선상에선 바이올린 선율이 울린다.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내부는 얼마나 호화로운가. 미소 가득 승무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이 공간에만 적용해 쭈∼욱 늘려 놓을 것 같은 여유로운 시간. 흡사 거대한 코끼리 등에 올라 끝없는 대륙을 횡단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크루즈 여행 말이다. 비극의 영화 ‘타이타닉’을 보며 어떤 이들은 눈물을 훔쳤지만 나는 크루즈의 매력을 다시 곱씹었다.

우리도 최근 크루즈 여행이 조금씩 늘고 있다. 국내에서 해외여행을 위한 여객선으로는 한중, 한일 카페리가 대표적이다. 한중 합작으로 운항되는 여객선사가 10여 개다. 위동항운의 인천∼칭다오, 인천∼웨이하이 항로가 대표적이다. 한일 여객선사는 팬스타가 대표적으로 부산∼오사카 라인이 인기가 많다. 한국∼중국과 한국∼일본을 잇는 여객선에서 벗어나 한국∼일본∼러시아 3개국을 운항하는 선사도 생겼다.

세계 유수의 크루즈가 정기적으로 부산과 제주, 인천, 속초 등을 기항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크루즈만 운영하는 여객선사는 없다. 그렇지만 중간 단계인 구획용선을 담당하는 여객선사가 생긴 것은 고무적이다. 이탈리아 여객선사 코스타의 크루즈선은 여객 2000여 명이 타는 선박이다. 강원 동해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서부 지역 여러 항구를 기항한다. 국내 여객선사 팬스타가 200명분을 코스타로부터 빌려 이 부분에 대한 운송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구획용선의 단계를 지나면 한국도 독자 크루즈선 운항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현대상선은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을 위해 크루즈선을 운항하기도 했다.

타이타닉호처럼 크루즈는 매력 덩어리다. 나는 카페리를 이용해 두 번 단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런 여행은 동료, 친구,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덩치 큰 외국인이라도 옆에 앉으면 어쩌지’라고 걱정부터 되는 비행기 여행에 비할 바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창끼리라면 수십 년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 여객선은 기울어져도 금방 제자리에 돌아오도록 무게 중심을 아래에 두면서도 좌우요동이 적도록 안전장치를 배 아래에 달아 흔들림이 적다. 육지처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충분히 잘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이 피곤하지 않고 귀국 후에도 바로 업무에 들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밤에 별자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바다’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바다를 보며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나’를 떠올리는 것도 매력이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의 항구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을 5배나 더 걸려 10시간을 항해해야 한다.

정년퇴직을 하면 크루즈선 선장으로 근무하고 싶다. 일반 상선의 선장과 달리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므로 심적 부담이 크다. 그렇지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며 친분을 쌓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가즈∼아, 로스쿨 교수 출신 선장이 운항하는 대한민국 크루즈선으로.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크루즈#여행#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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