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사로 돌아온 12년 교장 “이젠 담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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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문여고 김성일 교사
“처음엔 습관 못고쳐 교사에 지적도… 학생 항의 받고 바로 사과했죠
담임 맡아 아이들과 가까우니 행복”

2년 전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간 김성일 창문여고 교사(가운데)가 1일 교내 바자회에서 학생들과 판매 중인 인형을 들어 보였다. 김 교사가 “배가 좀 신경 쓰이는데” 하며 돼지 인형으로 배를 가리자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년 전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간 김성일 창문여고 교사(가운데)가 1일 교내 바자회에서 학생들과 판매 중인 인형을 들어 보였다. 김 교사가 “배가 좀 신경 쓰이는데” 하며 돼지 인형으로 배를 가리자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쌤!”, “성일 쌤∼”.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 2학년 12반. 김성일 교사(50)가 담임을 맡은 반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불렀다.

“학생들이 ‘쌤’ 이름을 불러요. 예전엔 절대 안 그랬죠.”

김 교사가 웃으며 말했다. 2년 전만 해도 김 교사는 학생들이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교장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교장의 임기를 최대 두 번으로 제한했다. 일부 사립학교에서 교장이 몇십 년씩 근무해 생기는 부작용을 막고, 공립학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서였다. 교장 임기를 마쳤지만 정년이 남았다면 교사를 할 수도 있다.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학교 관리자로서 교사, 학생, 학부모를 대했던 태도를 한순간에 바꾸기 어려워서였다. 어느 날 김 교사는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은 학생을 발견했다. 바로 교실 내 인터폰을 들고 생활지도 부장교사에게 “왜 확인하지 못했느냐”고 교장처럼 지적했다. 한 학생이 “저희에게는 다 똑같은 선생님이신데 저희 앞에서는 안 그러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선생님이 교장에 너무 익숙했나 보다.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로 미안하다.”

이제 학생들에게 김 교사는 친근한 ‘쌤’이 됐다. 임우빈 양(17)은 “교장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니 처음엔 어색했지만, 쌤이 몸으로 놀아줘서 금방 풀렸다”고 말했다.

창문여고는 김 교사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다. 체육 정교사 자격증을 땄지만 김 교사는 3년 동안 밑바닥부터 일했다. 수위로 학교의 낮과 밤을 지켰고 인쇄실에서 가정통신문과 시험지도 찍어봤다. 이후 교사를 10년 하다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동안 교장을 했다. 서울 내 최연소(2004년 당시 36세) 교장답게 수업에 많은 혁신을 불러왔다. 학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모든 교사의 수업 동영상을 찍은 뒤 CD로 만들어 도서관에 비치했다. 블록타임제(두 시간 연속 수업)와 학생들이 교과 교실로 찾아가는 수업도 시작했다.

이제 김 교사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편의시설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법인국장도 겸하고 있다. ‘갑자기 생리할 때 당황스럽다’는 학생들 의견을 반영해 생리대 자판기를 놓고, ‘운동장에서 햇빛이 강해 얼굴이 탈 것 같다’는 투정에 차광막을 설치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이 어떤 걸 불편해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며 “학생들과 가까이 있으니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서울 창문여고#김성일 교사#평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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