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간 이한열 운동화 치료한 ‘미술품 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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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 복원 전문가 김겸씨
마르셀 뒤샹-백남준 작품 등 새 생명… “복원은 시간과 사연 불러내는 것”
작업과정 담은 에세이 펴내

김겸 대표는 “예술가가 작품을 태어나게 한 존재라면 복원가는 작품이 다치거나 노화로 처치가 필요할 때 이를 치료하는 의사 같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겸 대표는 “예술가가 작품을 태어나게 한 존재라면 복원가는 작품이 다치거나 노화로 처치가 필요할 때 이를 치료하는 의사 같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2015년 이한열기념관에서 밑창이 부스러져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을 들고 왔다. 1987년 최루탄을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씨가 당시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 예상됐지만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의 김겸 대표(50)는 “예, 가능합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집중 치료가 시작됐다. 1980년대 판매된 타이거 운동화의 소유자를 찾아 전국을 헤맸고, 조각나 있던 운동화 밑창에 에폭시 수지를 주입하는 작업 등이 이어졌다. 3개월의 치료 끝에 타이거 운동화는 새 생명을 얻었고, 지금도 이 운동화는 이한열기념관 상설전시관에 온전한 모습으로 전시돼 있다.

최근 미술품 복원가의 세계를 다룬 에세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를 출간한 김 대표를 경기 고양시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치료 이듬해인 2016년 이한열 운동화의 복원 과정을 담은 소설 ‘L의 운동화’(민음사)가 출간됐고, 지난해에는 영화 ‘1987’에서 다시 다뤄졌다”며 “책 제목처럼 유물 복원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백남준, 이성자….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김 대표의 손을 거쳤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름난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을 복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한열의 운동화뿐 아니라 동네 주민의 인형, 길거리에서 산 미술품처럼 일상의 문화유산들이 모두 그의 치료 대상이다. 김 대표는 미술품을 자동차에 비유하며 복원에도 애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큰 우리나라에서 만약 자신의 차량이 긁히기라도 하면 비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수리·복원을 합니다. 관련 산업 역시 크게 발달해 있죠. 하지만 미술품이나 유물에 대한 애정이 한국 사회에서 크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자기 소유의 미술품을 복원하는 게 일상이 된 프랑스나 일본 등 이른바 문화 선진국과 확연히 구분되죠. 우리도 미술품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복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세계 어느 곳보다 ‘빠름’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영국 유학 시절 참여한 런던의 링컨대성당(1280년 완공) 작업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복원 세태에 일침을 가했다.

“링컨대성당은 지금도 70년째 복원 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수백 년 동안 같이 살아왔는데 고작 수십 년 정도 건강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거죠. 3년 만에 복원을 끝낸 숭례문을 보고 100년 후 후손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요.”
 
고양=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예술작품 복원#김겸#이한열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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