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훈 “모양도 소리도 한국적 파이프오르간 만드는 게 나의 소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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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문기자의 人]국내 유일 파이프오르간 제작 장인 홍성훈 씨

홍성훈 씨가 2014년 경기 양평 국수교회에 설치한 13번째 작품 ‘산수화’ 파이프오르간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양평=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홍성훈 씨가 2014년 경기 양평 국수교회에 설치한 13번째 작품 ‘산수화’ 파이프오르간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양평=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김상철 전문기자
“한국에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동유럽 우크라이나에 가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죠. 현지인들이 한국산이라는 얘기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홍성훈 씨(58)는 “작품을 유럽에 보내 우리나라 위상을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올해는 한-우크라이나 수교 25주년이자 고려인 이주 80주년이라 의미가 더 컸다”고 말했다.

본고장 유럽에 파이프오르간 첫 수출

홍 씨가 제작한 파이프오르간이 9월 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슬로바지차교회에서 울려 퍼졌다. 동양에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본고장인 유럽에 수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내전 사태로 파괴된 교회 재건 소식을 한국 선교사를 통해 듣고 성가대와 앙상블 등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소형 이동식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해 기증했다. 가로, 세로 각 1m 크기에 파이프 220개가 4가지 악기 소리를 낸다. 기쁨, 부활의 뜻을 담아 작품명을 ‘나비’로 붙였다.

홍 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파이프오르간을 만드는 장인이다. 명함에는 ‘오르겔바우 마이스터’라고 적혀 있다. 독일어로 오르겔(Orgel)은 파이프오르간, 바우(Bau)는 건축, 마이스터(Meister)는 명장(名匠)을 뜻한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2번째로 독일정부 공인 자격인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를 획득했다.

파이프오르간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관을 음계에 맞춰 배열하고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서양 악기로 현존 악기 중 가장 크다. 큰 성당이나 교회, 콘서트홀 등에서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악기 소리를 내는 스톱 3, 4개가 있는 것부터 700가지 악기 소리를 내는 것도 있다. 모차르트는 오케스트라처럼 수많은 악기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을 ‘악기의 제왕’이라고 극찬했다. 오보에, 클라리넷 등 플루트 계열 목관악기와 트럼본, 호른 등 트럼펫 계열 금관악기가 기본 악기로 쓰인다. 수명은 150∼200년이다. 국내에는 200대 정도 있다. 우리나라 첫 파이프오르간은 1918년 서울 정동제일교회에 설치됐다.

파이프오르간은 대체로 건축 설계 단계에서 구조와 용도, 음향은 물론 지역 역사와 전통을 고려해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제작 과정도 건축과 흡사해 해외에선 파이프오르간 제작을 ‘만들다’(make)가 아닌 ‘건축하다’(build)로 표현한다.

세계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20여 개국이다. 대부분 유럽과 북미 국가이고 동양에선 한국, 일본, 필리핀 3국이다.

홍 씨는 “유럽은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하는 나라를 진정한 문화 선진국으로 친다”며 “그런 면에서 한국도 문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말했다.

경기 양평군 양서면 경강로 1241. 막다른 곳에 목공실, 제작실, 사무실 등 건물 3동(棟)이 있었다. 목공실에는 나무 파이프와 목재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제작실에선 목공 경력이 30년을 넘는 베테랑 직원 2명이 바람상자(파이프에 공기를 불어넣어 소리를 내게 하는 부품)를 만들고 있었다. 기대했던 파이프오르간은 볼 수 없었다.

“여기서 파이프오르간을 보려면 운이 좋아야 해요. 한 대 제작하는데 대개 1∼2년, 길게는 5년 정도 걸려요. 마지막 완성 단계라야 작품을 볼 수 있어요.”

홍 씨는 “제작 중인 파이프오르간은 가로 14m, 높이 8m 크기에 17가지 악기 소리를 내는 파이프 약 1000개가 들어간다”며 “내년 말 서울 화양동성당에 설치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가무단 그만두고 독일 유학

홍 씨는 1남 2녀의 맏이로 서울 혜화초등학교와 삼선중을 거쳐 대동상고에 다녔다. 본디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나 보이스카우트 대원으로 5년간 활동한 덕에 남들과 잘 어울려 지내게 됐다. 학창시절 공부에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안양공전 산업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통기타 붐이 일어 학원에서 기타를 배웠다.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흥사단에서 봉산탈춤, 대금, 장구, 경기민요 등을 배웠다.

1985년 서울시립가무단에 들어갔다. 흥사단에서 익힌 덕에 춤을 잘 춰 신입단원으로 선발됐다. 하루 10시간 넘게 3개월간 연습해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 단역으로 처음 출연했다.

“전무송 최주봉 박상원 같은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공연했어요. 마흔 살이 돼도 조역조차 못 맡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연습이 안 됐어요.”

대기업 수준 월급을 주던 서울시립가무단을 1년 만에 그만두고 여동생이 신학을 공부하고 있던 독일로 떠났다. 외국인 입학정원이 있지만 지원자가 없는 학과를 찾아 뮌스터대 지질학과에 지원했다. 준비 없이 떠난 탓에 독일어 시험에서 떨어졌으나 1년 내 통과하는 조건으로 가입학했다.

도제 과정 거쳐 마이스터 되다

28세 때인 1987년 한 유학생이 화제에 올린 파이프오르간에 필(feel)이 꽂혔다. 교회를 찾아 파이프오르간을 보고 소리를 듣자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제(徒弟)가 되려고 파이프오르간 제작소를 찾아갔다. 마이스터는 독일어도 잘 못하는 외국인을 보고 황당해하다 “1년간 목공 프락티쿰(실습)을 해오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는 간절한 마음에 한겨울 추위를 잊고 시내를 뒤져 일할 사람을 구하는 업체를 찾아냈다. 목공 기술은 커녕 공구 이름조차 모르는 생초보여서 월급 없이 용돈만 줬으나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못 됐다.

1988년 목공 실습을 마치고 마이스터를 다시 찾아가 플라이터오르겔바우에서 도제 과정을 밟았다. 초기 1년 넘게 작업실과 화장실 청소 등 허드렛일을 했다. 독일 견습생과 달라 굴욕감을 느꼈으나 끝까지 마치겠다는 의지로 이겨냈다.

“하루 8시간 넘게 서서 일하는 게 익숙지 않아 특히 힘들었어요. 퇴근 후 집에서 용어를 익히려고 책을 폈다가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어요.”

도제 과정 때 매년 2차례 직업학교에 가서 이론과 실습수업을 받았다. 3년 6개월간 도제 과정을 마친 뒤 작동하는 미니어처를 만들고 독일어 경제 사회 등 일반과목 시험을 거쳐 도제 자격증을 땄다.

1991년 마이스터 과정에 도전하려고 클라이스오르겔바우에 지원했다. 1882년 창업한 클라이스는 쾰른대성당과 모스크바국제아트홀 등 세계 50여 개국 명소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 세계적 명가다. 헤르만 지몬이 꼽은 ‘히든 챔피언’이다.

“클라이스 작품은 책으로 많이 봤어요. 3대손 한스 클라이스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고, 직업학교에서 만난 클라이스 견습생은 자부심이 대단했죠.”

마침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려는 서울 광림교회와 연결돼 제작 의뢰서를 클라이스에 전달하게 됐다. 설치 후 유지·보수가 필요하니 마이스터 과정을 밟게 해 달라고 했다. 클라이스가 해외로 눈을 돌리던 때여서 받아줬다.

마이스터는 도제 자격을 얻은 뒤 5년간 실무 경험을 쌓고 스승 마이스터가 허락해야 시험을 볼 수 있다. 직원 60여 명의 클라이스에도 마이스터는 3명뿐이었다. 시험은 2년에 한 번 있고 기회는 2번 주어진다. 시험 전에 1년 과정 마이스터학교에 다녀야 한다.

홍 씨는 장차 독립할 생각으로 “현장을 많이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클라이스는 스테파누스 성당과 아테네 콘서트홀, 베르히데스가덴 대성당 등 여러 설치, 보수 현장에 보내줬다.

루드빅스부르크 마이스터학교를 마치고 1996년 첫 시험을 봤다. 일반 과목은 통과했으나 작동하는 파이프오르간을 100시간 내 만드는 실기 시험에서 긴장한 나머지 실수해 떨어졌다.

낙담한 스승이 “일단 쉬어라”고 해 가족을 만나러 귀국했다. 전례 없이 6명이 탈락해 내년에 특별시험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독일로 되돌아갔다. 38세 때인 1997년 2차 시험에 합격해 마이스터 자격을 얻었다.

“마이스터는 독일정부가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운영하는 제도예요. 외국인에게 문호 개방은 자국 기술을 반출하는 것과 다름없는데도 기회를 줘 감사하죠.”

독일에 남으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고 존경도 받지만 그는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광주 임동주교좌대성당 등에 설치

1997년 11월 귀국해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생겨 한동안 일거리가 없었다. 이듬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음악감독과 연주자의 요청에 따라 마이스터 시험 때 만든 파이프오르간을 분해해서 가져와 첫 작품으로 소성당에 설치했다.

“기념 연주를 듣는데 마치 천상의 소리 같았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평생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실질적인 첫 주문은 1999년 서울 봉천제일교회에서 받았다. 국내에 제작소를 마련하지 못한 때라 독일로 가 공장을 빌려 만들어 국내로 가져왔다. 국내에 선보일 파이프오르간의 기준이 된다는 생각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는 대성당에 짓는 것을 큰 영예로 생각한다. 홍 씨는 국제 공모에 당선돼 2006년 광주 임동주교좌대성당에 설치했다. 가로 6m, 높이 10m에 파이프 1800개, 스톱 30개로 된 파이프오르간으로 그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크다.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때는 건물 외부에 77m 높이 스카이타워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기술 자문을 맡아 뱃고동 음색으로 항구도시 여수의 특색을 살렸다.

홍 씨는 20년간 파이프오르간 17대를 제작했다. 대당 가격은 5000만∼10억 원이다. 그는 디자인, 설계, 본체 제작, 정음, 해체, 현장 설치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한다. 나무 파이프와 연주대 같은 나무 부품은 모두 자체 제작한다. 메탈 파이프와 모터 등은 유럽에서 수입해 쓴다. 자체 제작 비율은 40% 정도로 독일 명가의 절반 수준이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 설비를 갖출 만큼 주문이 많지 않아서다.

홍 씨는 모양과 소리가 유럽 전형과 다른 한국적 파이프오르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승이 당신만의 파이프오르간을 만들고 오르간을 널리 알리라고 당부했어요. 한국인이 좋아할 수 있는 파이프오르간을 만드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홍성훈 씨의 ‘한국형’ 제작 노력▼
 
칠보장식… 산수화풍… 작품마다 한국 전통미 가득
 
퉁소-대금-생황 전통악기 소리도 앞으로 만들 작품에 담아낼 계획

 

서울 중소기업DMC센터에 있는 ‘블루’ 파이프오르간.
서울 중소기업DMC센터에 있는 ‘블루’ 파이프오르간.
파이프오르간은 악기이자 하나의 건축물이다. 그래서 파이프오르간은 형태로 보이는 소리와 음색으로 들리는 소리가 합쳐질 때 생명체가 된다.

홍성훈 씨는 여러 작품을 통해 형태와 소리가 유럽과 다른 한국적 파이프오르간을 만들려고 애써 왔다. 마이스터는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파이프오르간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독일 스승의 영향을 받았다.

홍 씨는 원목 재질을 살려 갈색 위주인 유럽 전통 파이프오르간과 달리 작품에 다양한 색깔을 넣고 있다. 2012년 서울 중소기업DMC센터에 설치한 파이프오르간 바탕색은 블루오션을 뜻하는 푸른색이다. 건물 로비 중앙에 있는 점을 고려해 어디서 봐도 조형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앞뒤에 메탈 파이프, 좌우에 나무 파이프를 배치했다. 칠보작가 박수경 씨의 칠보 나비 12마리를 사면에 장식해 한국 전통미를 더했다.

‘홍매화’ 파이프오르간
‘홍매화’ 파이프오르간
2014년 경기 양평 국수교회에 지은 파이프오르간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연두색 틀 안에 주변의 산과 남한강, 능선, 은하수, 뻐꾸기 등을 담았다. 좌우 대칭 디자인을 버리고 파이프를 기하학적으로 배치해 크고 작은 산 3개를 원근감 있게 표현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015년 만든 14번째 작품은 이동식 소형 파이프오르간이다. 한국의 미를 담으려고 채화 작가 안명희 씨의 홍매화를 앞면과 측면, 보면대에 배치했다. 또 경첩 기능보유자 양현승 씨의 경첩을 여닫는 곳에 달았다.

홍 씨는 파이프오르간에 우리 고유의 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2001년 서울 봉천제일교회에 지은 작품에는 독일 소리보다 경쾌한 프랑스 로맨틱 음색에 풍부한 저음과 탁한 음을 새로 넣었다. 향후 퉁소, 대금, 생황 등 전통악기 소리를 담을 기반이다. 2007년 경기 성남 선사교회 작품에는 ‘홍 플루트’를 만들어 넣었다. 플루트 음색을 우리 정서에 맞도록 낮고 부드럽고 두텁게 바꾼 것이다.

그는 “아악에 쓰였던 편경, 편종 등도 담을 생각이다”며 “전통악기 소리를 내야 파이프오르간이 진정한 한국 악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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