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왕의 공개구혼… 양반집 딸들은 몸을 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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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 장가보내기/임민혁 지음/336쪽·2만 원·글항아리

다소 가벼운 느낌의 제목과 달리 조선 왕조 600년간 왕들의 결혼 과정을 꼼꼼하게 복원해 낸 책이다. 저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으로 조선의 각종 행사 문화를 기록한 주자의 ‘가례(家禮)’를 번역한 조선 역사 전문가다. 책은 왕비를 찾는 구혼부터 혼수, 결혼식, 첫날밤 등 왕의 결혼에 관한 모든 과정을 쉽게 풀어 설명한다.

조선의 왕의 결혼은 로맨스와 낭만보단 엄격한 규칙과 심사를 거친 국가의 행사였다. 유교 질서를 따르는 조선답게 ‘국조오례의’ ‘경국대전’ 등 국법에서 규정한 절차에 의해 구혼 과정이 진행된다.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딸이 있는 양반 가문에 자기소개서와 같은 ‘처녀단자’를 올리도록 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행차 등을 할 때 탔던 가마의 한 종류인 사인교(四人轎). 글항아리 제공
조선시대 왕실에서 행차 등을 할 때 탔던 가마의 한 종류인 사인교(四人轎). 글항아리 제공
가장 중요한 절차는 실제 왕비를 고르는 ‘간택’이다. 영조처럼 국왕이 직접 간택을 한 적도 있지만, 조정의 대신들이 왕비를 선택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 권력욕이 있던 일부 사대부 가문을 제외하곤 일반 양반가에선 오히려 간택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꺼렸다는 점이다. 이유는 과도한 경제적 부담 때문. 간택을 위해 입궐 과정에서 새로 옷을 장만해야 했고, 가마를 세내고 가마꾼의 노임 지급 등 결혼 준비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결혼 자금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많은 지금의 현실과 묘하게 겹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최상위 권력층 간에는 왕비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조선 중후기 권력의 핵심 세력이었던 서인은 국혼을 잃지 말자는 ‘물실국혼(勿失國婚)’이란 기치를 내걸기도 했다. 실제로 인조반정 이후 모든 조선 왕들은 왕비를 서인 계열(노·소론) 가문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특히 책에선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후궁의 결혼 과정에 주목한다. 첩 정도로 취급받았을 것이란 통념과 달리 후궁 역시 미래의 왕을 낳을 수 있는 후보로 여겨져 일정한 예를 갖춘 결혼 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후궁을 들이면서 여색을 밝히는 게 아니라고 극구 변명한 중종, 어머니가 무수리라는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후궁의 격을 높여준 영조까지 알려지지 않은 조선 왕들의 결혼에 관한 다양한 사례가 읽는 맛을 더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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