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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짝꿍 못 넘어오게 책상에 줄?… 옛날얘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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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짝꿍 못 넘어오게 책상에 줄?… 옛날얘기랍니다

최예나 기자 입력 2017-03-25 03:00수정 2017-03-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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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판부터 강화유리까지… 학교 책걸상의 진화
박침곤 우진교구산업 회장은 강화유리 책상은 거칠게 다뤄도 깨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합판 책상과 달리 색깔도 알록달록하다. 상판 아래에 앞가리개도 부착했다. 군포=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일단 헌것 쓰게 하세요. 한번 사면 15∼20년 쓰는데, 며칠 늦더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달 22일 책걸상 전문 생산업체 우진교구산업(경기 군포시)에는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3월 개학 날짜에 맞춰 반드시 책걸상을 배달해 달라는 독촉 전화였다. 우진교구산업은 지난해 12월부터 직원 30명이 전부 매달려 하루에 책걸상 500조(세트)씩 제조했다. 하지만 주문량이 많아 모든 학교의 납품 기한을 맞출 수 없었다.

넘어져도 깨지지 않는 책상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가는 건 우진교구산업 박침곤 회장(80·전국 KS책걸상협의회장)이 2009년 개발한 강화안전유리 책상이다. 이건 모든 사람들이 ‘학교 책상’ 하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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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판으로 만든 기존 책상은 늘 흉터투성이였다. 학생들이 책상에서 얌전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볼펜이나 매직, 색연필로 책상을 도화지 삼는가 하면 때로는 칼이나 송곳으로 조각 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쉽게 낙서를 지우려면 반질반질한 유리가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상은 이리저리 쿵쿵 부딪치기 일쑤인데 만에 하나 깨져서 학생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이 걱정이 앞섰다. 이때 박 회장 머리에 떠오른 게 자동차 앞 유리였다. 사고가 나도 파편은 튀지 않고 금만 가는 강화유리. 기자에게 이런 설명을 하던 박 회장은 사무실에 있던 책상을 옆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쳤다. 책상이 큰 소리를 내며 맥없이 고꾸라졌다. 하지만 책상은 어느 한 곳 흠집 난 데 없이 멀쩡했다.

제일 처음 강화유리 책상에 관심을 보였던 서울 A초등학교는 반신반의했다. 아이들이 하도 낙서를 하니 유리로 만든 책상이 솔깃하긴 했다. 하지만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게 영 못 미더웠다.

“그럴 리 없지만 만약 하나라도 깨지면 5년간 무상으로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깨지면 전화 주세요.” 박 회장이 말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나도록 연락은 없다.

경기 B고등학교 이사장 역시 책상 강도를 의심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사장은 대뜸 수위에게 망치를 가져오게 했다. 박 회장이 “망치로 내리쳐도 파편은 절대로 튀지 않는다”고 말한 직후였다. 이사장의 지시에 수위는 망치로 책상을 내리찍었다. 상판은 처참하게 금이 갔다. 하지만 파편은 한 조각도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이사장은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전교생 1400명의 책걸상을 한번에 바꿨다.

강화유리 책상은 학교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유명해졌다. 현재 우진교구산업은 지난해 조달청에 등록된 22개 책걸상 생산업체 중 책상과 걸상 매출 점유율이 모두 1위(각 44.4%, 50.5%)다. 지난해 학교로 납품된 책상과 걸상만 각각 5만2869개, 6만2209개다. 2012년 강화유리 책상이 조달청 우수제품으로 지정되면서 수요가 점점 늘었다.

강화유리 책상은 알록달록하다. 강화유리 밑에 하늘 아이보리 그린 색깔 투명 접착필름을 붙여서다. 요즘 학교는 책걸상을 바꿀 때 교무실에 여러 업체 제품을 놓고 학생과 교사가 직접 고르게 한다. 교장과 행정실장의 입맛에만 맞추면 쉽게 납품할 수 있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학교에는 여교사가 대부분이고 학생들도 예쁜 것을 선호한다. 수많은 합판 책상을 제치고 강화유리 책상이 표를 많이 얻는 이유다.

2014년엔 앞가리개가 부착된 책상이 나왔다. 이 책상은 여학생과 교사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대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허리 통증을 더 호소한다. 교복 치마를 짧게 입는 탓에 옷 안이 보이지 않도록 잔뜩 다리를 오므리고 앉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상 상판 밑 앞쪽과 양옆에 가리개를 부착하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여학생들은 “한여름에도 두꺼운 담요를 무릎 위에 덮고 있어야 했는데 이 책상은 너무 편하다”며 좋아한다.

교복을 입지 않는 초등학생을 위해서도 앞가리개가 부착된 책상을 구입하는 학교가 많다. 가격차를 고려해 남녀공학이라면 여학생 것만이라도 가리개를 부착한 책상을 구입한다. 지금은 다른 업체에서도 가리개를 붙인 책상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제작 비용 부담 때문에 가리개를 상판 앞쪽에만 붙이기도 한다.

학생 신장과 학생수 변화 따라 바뀐 책상

국내 책걸상은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소나무로 책걸상을 만들었다. 1970년대부터는 합판 책걸상만 제작됐다. 정부가 KS(한국산업표준) 학생용 책상 및 의자 규격을 제정하면서 재료를 합판으로만 규정했기 때문이다. 일본 규격을 그대로 가져온 데 따른 것이었다.

책상 재료가 다양해진 건 2008년 말부터다. 책걸상 업체들은 국가기술표준원에 “국산이면서 질 좋은 소재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합판만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KS 재료 규정이 합판과 섬유판 등으로 완화됐다.

첫 변화는 사출(射出) 책상이었다. 합판으로 만드는 건 기존과 동일하지만 상판 옆면 테두리에 우레탄 소재를 붙여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상판 윗부분에 홈을 파서 연필이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한 것도 특징이다.

그 뒤엔 법랑(세라믹)으로 책상을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엔 거의 제작하지 않는다. 업체들이 비용 때문에 법랑을 낮은 온도에서 굽다보니 상판이 매끄럽지 않게 나오는 탓이다. 또 학생들이 칼로 상판을 긁은 자리에 때가 잘 끼다 보니 학교에서 선호하지 않는다.

우진교구산업에서 시작된 강화유리 책상은 현재 다른 업체 한 곳도 제작하고 있다. 아직 합판 책상도 생산된다. 이건 재료를 100% 베트남에서 들여온다.

2인용 책상은 2001년 중반부터 사라졌다. 과거 대부분 초등학교는 2인용 책상을 썼다. 짝꿍이 넘어오지 못하게 중간에 금을 그어본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더 이상 2인용 책상이 필요 없어졌다. 또 국제 규격 어디에도 2인용 책상은 없다는 이유로 KS 규격에서 2인용 책상 규정이 사라졌다.

책걸상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변화다. 그전까지 학교는 학년별 책상을 모두 따로 구입해야 했다. 학교로서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학생들 불만도 높았다. 같은 학년이어도 어떤 학생에게는 책상이 너무 높고, 다른 학생에게는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학년별 표준 신장에 맞는 책상을 구매해도 학생 개개인의 키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박 회장이 2000년에 먼저 높이 조절 장치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책상 다리에 끼워져 있는 높낮이 조절 키를 풀면 학생 키에 맞게 책상 높이를 올렸다 낮췄다 할 수 있다. 학교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더 이상 여러 규격의 책상을 사지 않아도 되니까. 이러한 반응에 힘입어 국가기술표준원은 2001년 KS 규격을 개정하면서 고정형 외에 조절형에 대한 규정을 따로 담았다.

현재는 대부분 업체가 조절형 책걸상을 생산한다. 교육부도 업체들에 “특히 초등학교가 고정형을 주문하면 조절형으로 바꾸도록 유도해 달라”고 권고한다. 1년 사이 키가 급격히 크는 초등학생들이 그때그때 자기 신장에 맞게 책걸상을 조절해 쓰게 하기 위함이다.

책걸상 호수는 학생 신장 변화와 국제 규격을 반영하면서 바뀌었다. 1976년부터 2001년 KS 규격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1∼11호로 구분됐다. 학생 신장이 98∼111cm면 1호, 105∼118cm면 2호로 시작해 161∼174cm 10호, 168cm 이상 11호였다. 하지만 지금은 1∼6호만 있다. 표준 신장 105cm면 1호, 120cm 2호, 135cm 3호, 150cm 4호, 165cm 5호, 180cm 6호다. 대부분 업체가 책걸상을 조절형으로 제작하므로 모든 호수를 생산하진 않는다. 우진교구산업은 스몰형과 라지형만 만든다. 초등학생이 쓰는 스몰형은 KS 규격상 3∼5호, 중고교생이 쓰는 라지형은 4∼6호다.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용(2∼4호)도 제작된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1학년이 키에 맞지 않게 너무 높은 책상을 사용하지 않도록 작은 책상도 만들어 달라”고 권고했다. 국내에선 우진교구산업과 코아스 등 4개 업체가 생산 중이다.

학생수가 감소하면서 책상 상판 너비 규격도 2001년에 바뀌었다. 2001년 국가기술표준원은 책걸상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세로와 가로 너비가 40×60cm였던 책상 규격을 50×70cm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한 반 학생수가 35명까지 줄어든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교실에 사물함이 설치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무겁게 책을 들고 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박 회장은 “사물함 때문에 교실 길이가 줄어드니 책상을 지나치게 넓히면 애들이 지나다닐 통로가 좁아진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국가기술표준원은 최종적으로 책상 규격을 45×65cm 또는 50×70cm로 변경했다. 학생수가 많이 감소한 학교는 좀 더 넓은 책상을 쓰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조금 넓은 책상을 쓰라는 취지였다. 현재 학교의 약 99%는 45×65cm 책상을 쓴다. 50×70cm는 너무 크고 무겁다는 이유에서다.

의사에서 책걸상 제조업으로

책상 재료는 점점 다양해졌다. 소나무로 만든 책걸상, 합판 책걸상, 강화유리 책상(왼쪽부터). 우진교구산업 제공
박 회장은 책걸상 변화의 산증인이다. 하지만 1988년 사업에 뛰어들 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집까지 날아가고 남은 게 단 하나도 없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잘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빚만 가득한 친구의 책걸상 업체를 인수했다.

“도와 달라”는 친구의 말을 외면하지 못했다. 한 푼이 두 푼이 되고, 보증으로까지 이어졌다. 그게 이렇게 큰 부메랑이 돼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박 회장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의사였다. 부모는 자식이 의사가 되길 바랐다.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 한자 針(바늘 침)까지 넣어 작명했다. 정말 흔치 않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박 회장 직업이 의사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름 뜻을 들은 사람들은 “거 참, 이름 한번 잘 지으셨네”라고 입을 모았다.

회사에 직원들이 그대로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침 서울 목동과 상계동, 경기 성남의 분당, 고양의 일산에 아파트가 대거 들어섰다. 학교가 신설되는 건 당연했다. 기술력과 유통망이 있으니 납품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박 회장은 남들과 똑같은 합판 책걸상을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수많은 특허로 이어졌다.

탄성의자는 허리 통증과 척추측만으로 병원을 찾아왔던 수많은 학생 환자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의자에 올바르게 앉으려면 등받이에 등을 기대야 한다. 하지만 합판 의자는 딱딱한 탓에 학생들이 대개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않았다. 운동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앉는 자세까지 잘못됐으니 허리가 아픈 건 당연했다. 이에 박 회장은 탄성이 있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까딱거리며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도록 의자를 만들었다.

이제 대학 동기들은 모두 박 회장을 부러워한다. 교수 친구들은 정년(65세) 이후 일을 쉰 지 오래다. 개원 의사 친구들도 대부분 70세에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박 회장은 아이디어 하나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대표이사 자리는 몇 년 전 산업공학을 전공한 첫아들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 KS책걸상협의회장으로 업계 대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0년 42곳이던 책걸상 업체(조달청 등록 기준)는 현재 22곳으로 줄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며 경영난을 버티지 못한 탓이다.

책걸상 내구연한은 8년.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15∼20년씩 쓴다. 예산 때문에 교체할 엄두를 못 낸다. 바꾸더라도 전 학년 것을 한 번에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간신히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한다. 일부 교육청은 책걸상 교체 예산을 너무 낮게 책정해 “지원을 받아도 원하는 책걸상을 사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학교가 많다. 박 회장은 “아무리 책걸상을 튼튼하게 만든다고 해도 너무 오래 쓰면 제 역할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군포=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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