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비밀이 ‘황금비’? 감쪽같이 속았군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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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파르테논 신전의 웅장함, 모나리자의 단아한 얼굴, ‘밀로의 비너스’의 풍만한 육체….

 사물의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인 비율을 나타낸다는 ‘황금비’에 맞춘 예술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황금비는 보편적 아름다움의 법칙을 수학의 언어로 보여주는 대표적 도구로 꼽힌다. 수학의 실용적 심미적 쓰임새를 보여주는 사례로 교육 현장이나 실생활에서도 종종 거론된다.

 황금비가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황금비를 따른 것으로 알려진 많은 걸작들은 사실 황금비와 무관하다. 우리가 속고 있었던 황금비의 진실을 소개한다.

 
우리가 속고 있던 황금비의 진실
 
○ 황금비, 처음부터 황금비는 아니었다


 아래 그림 속 15개 사각형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각형을 골라보자. 결정이 어렵다면, ‘황금비’를 떠올려 보자. 보기에 가장 익숙하고 안정적이며, 균형 잡혔다고 느껴지는 사각형을 고르면 된다(답은 기사 중간에).

〈그림〉


 황금비는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아름다운 비율’의 대명사로 오랫동안 쓰였다.

 기원전 300년경 활동한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쓴 ‘원론’에 오늘날 황금비라 불리는 개념이 등장한다. 황금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유클리드는 한 선분을 서로 다른 길이의 두 선분으로 나눌 때, 전체 선분과 나눈 선분 중 긴 선분의 길이의 비와 긴 선분과 짧은 선분의 길이의 비가 같도록 나누는 문제를 떠올렸다. 나눈 두 선분의 비율이 ‘1.61803…’으로 이어지는 무리수 값을 얻었다.

 유클리드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구한 비(약 1:1.618)를 ‘극대와 극대가 아닌 비’라고 소개했다. 당시만 해도 황금비라는 이름은 없었다.

○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도구, 황금비?


 황금비 열풍이 불게 된 이유에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이탈리아 수학자 루카 파촐리가 1509년 출간한 저서 ‘신성한 비례’에서 “이것이야말로 예술적 균형과 조화를 갖춘 완벽한 비”라고 언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이 비가 언제부터 황금비로 알려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황금비라는 단어는 1835년 독일 수학자 마르틴 옴이 쓴 글에서 처음 발견할 수 있다.

 파촐리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많은 예술평론가들은 한 작가의 개인적 의견일 뿐이었던 황금비가 완성도 높은 예술 작품의 증거라고 오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유명한 건축물과 작품 속에서 황금비를 찾으려 했다. 수학적 혹은 기하학적이라는 해석이 붙으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증명된 듯한 착각이 생겨서다.

 (위 그림에서 황금비를 따른 사각형은 8번이다. 보편적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는 황금비가 독자 눈에도 가장 아름다워 보였는지?)

○ 파르테논 신전,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황금비는 어디에?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 당대 최고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총감독을 맡아 60여 년에 걸쳐 건설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균형미가 돋보여 세계적인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파르테논신전의 단순하면서도 웅장한 아름다움의 이유가 ‘황금비’ 때문이라고 잘못 알려져 왔다. 위키미디어 제공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 당대 최고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총감독을 맡아 60여 년에 걸쳐 건설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균형미가 돋보여 세계적인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파르테논신전의 단순하면서도 웅장한 아름다움의 이유가 ‘황금비’ 때문이라고 잘못 알려져 왔다. 위키미디어 제공
 19세기 초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에 기하학적 해석을 덧붙이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누군가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를 연관 지었고, 세계 각지에서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이 황금비 때문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우리 수학 교과서에서도 버젓이 황금비의 대표적인 예로 파르테논 신전이 등장한다.

 하지만 1992년 조지 마코스키 미국 메인대 컴퓨터정보과학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논문 ‘황금비에 대한 오해’에서 “파르테논 신전에는 황금비가 없다”고 단언했다. 마코스키 교수는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비를 따른다고 설명하는 책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황금비를 계산할 때 어떤 책은 기단을 기준으로 하고, 또 다른 책에서는 건축물 꼭대기 튀어나온 부분을 기준으로 하는 식이었다.

 마코스키 교수는 미국 뉴욕대 미술사학과 마빈 트랙턴버그 교수와 이저벨 하이먼 교수가 파르테논 신전을 실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파르테논 신전에는 황금비가 없다고 설명했다. 뉴욕대 교수팀이 측정한 길이를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파르테논 신전의 가로 세로비는 정수비인 9:4를 따른다. 파르테논 신전 복원팀은 이런 연구를 받아들이고 공식적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가로 세로비는 황금비가 아닌 9:4를 따른다고 밝힌 상태다.

 황금비를 소개할 때마다 등장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도, 고대 그리스의 대표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에도 황금비는 없다. 이 작품을 황금비라고 주장하는 기록을 보면 모두 황금비와 유사한 값일 뿐 어디에서도 황금비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진실 공방을 하는 작품도 있다.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가 대표적이다.

○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버젓이 쓰여

 문제는 교과서다. 이차방정식 단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생활 속 수학 예시가 바로 황금비다. 황금비 적용 사례로 꼽히는 많은 예술 작품들이 황금비와 무관함이 드러났지만, 현장에선 잘 모르는 눈치다.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황금비를 적용한 예술 작품도 많은데, 굳이 황금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작품을 황금비 작품이라고 소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토로네 수도원은 건축가 스스로 정확하게 황금비를 따랐다고 밝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일상 속 수학의 의미를 보여줄 새로운 예를 발굴해야 할 때다.
 
조가현 gahyun@donga.com·염지현 동아사이언스 기자
#황금비#파르테논 신전#황금비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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