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신독재 연상시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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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정황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포착해 수사 중이라고 동아일보가 28일 보도했다. 당초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주도로 대통령정무수석실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 씨가 먼저 박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의 필요성을 주장해 박 대통령이 비서실에 구체화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에는 국가정보원이 동원됐다고 한다. 셀프개혁을 다짐했던 국정원이 또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올 10월 언론 보도로 공개된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시국선언 754명,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선언 6517명,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 선언 1608명 등 문화예술계 9473명의 이름이 열거돼 있다. 최 씨가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에게 갈 예산을 차단해 자신의 사업에 투입하려는 의도로 일을 꾸몄지만 김 전 실장이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까지 대거 포함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동아연극상 수상자인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는 2015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사업 희곡 분야에서 1위로 뽑히고도 최종 지원작에서 배제됐다. 대선 때 고교 동기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돕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작성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유신독재 시대로 돌리는 시대착오적 행태다. 문화예술의 힘과 가치는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인 표현에서 나온다. 11월 문인협회 작가회의 등 문학 5개 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뜨리는 큰 사건”이라고 보수와 진보 진영에 상관없이 한목소리를 낸 것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2014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파문을 일으킨 홍성담의 ‘세월오월’처럼 과도한 정치편향성을 드러낸 작품까지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 문화예술인을 집중 지원하고 보수 성향 예술인들을 차별해 문화계 토양을 황폐화시켰다. 좌든 우든 이념적 잣대로 문화예술을 흔들고 돈으로 문화인을 통제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10월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박근혜#최순실#블랙리스트#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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