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前 증조부가 심은 묘목이 거목됐듯… 한국도 세계로 뻗어나갈 ‘씨앗’ 심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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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선교사 언더우드 4대손 원한석씨
“1908년 심은 느티나무 자손 묘목… 서거 100돌 맞아 12일 연세대 식수”

언더우드가(家) 4세인 원한석 연세대 이사가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본관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 뒤로 보이는 동상이 그의 증조부인 언더우드선교사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언더우드가(家) 4세인 원한석 연세대 이사가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본관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 뒤로 보이는 동상이 그의 증조부인 언더우드선교사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108년 전 증조할아버지가 가져온 묘목이 거목으로 자란 것처럼 우리나라도 세계에 좋은 씨앗이 될 줄 믿습니다.”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을 세운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의 4대손 원한석 연세대 이사(피터 언더우드·61·경영컨설턴트)는 증조부가 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키운 ‘믿음의 나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겸손해진다. 6일 연세대 스팀슨관에서 만난 그는 “선조의 헌신이 맺은 열매를 보는 것도 감격스럽지만, 나무 그늘에 머무르지 말고 세계로 뻗는 ‘밀알’ 같은 한국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885년 조선 땅을 밟은 언더우드는 1908년 선교 모금차 들른 미국에서 영국산 둥근잎느티나무 두 그루를 가져와 새문안교회와 양평동교회에 심었다. 어린잎을 삶아 나물로도 먹고 재질이 단단해 갖은 도구를 만들 수 있어 조선 백성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더우드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기도문에서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크지 못하는 땅’ 조선을 위해 기도하며 1916년 소명을 마칠 때까지 교회 21곳과 보육원 설립, 기독교청년회(YMCA) 조직, 한영사전 편찬 등 한반도 근대화를 위해 힘썼다.

원 이사의 부친 고 원일한 박사도 언더우드 1세만큼 한국을 사랑했다. 원 이사의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는 느티나무를 볼 때마다 기도하듯 생각에 잠기곤 했다. 원 이사는 “중학생 때 판문점 견학을 함께 간 아버지가 6·25전쟁 휴전협정 당시 작은아버지(원득한)와 함께 유엔군 통역관으로 일한 경험을 조용히 설명해 주셨는데, 관광객뿐 아니라 가이드 역할을 하던 군인도 아버지 주위로 모였다”고 떠올렸다.

언더우드가(家)의 한국 사랑은 5, 6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 이사의 딸과 조카들의 페이스북에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대다수가 ‘SOUTH KOREA’라고 썼다. 후손들의 한글 이름 중에는 한강의 ‘한(漢)’자가 들어간 이름이 많다. 인터뷰 내내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말한 원 이사는 “형(원한광)의 손자들까지 한국 이름이 있다. 다들 자신의 뿌리와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지원(2세 원한경)과 6·25전쟁 참전(3세 원일한·재한·득한)에 이어 30년 넘게 한국에서 교편을 잡았지만(4세 원한광) 아직도 언더우드가는 고마운 ‘외국인 가문’일 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낸 원일한 박사도 2004년 생을 마칠 때까지 영주권 없이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원 이사는 “외모는 달랐지만 한국을 끔찍이 사랑했던 언더우드와 그 후손들의 마음이 영원히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학 분쟁의 단골 소재인 설립자 가족의 간섭과 소유권 다툼이 없는 비결을 묻자 원 이사는 “선조들은 개인 욕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일했다”며 “그 정신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걱정할 뿐, 소유권을 운운하는 건 이상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연세대는 12일 언더우드 서거 100주기를 맞아 그가 가져온 느티나무의 씨앗으로 기른 묘목을 캠퍼스 안에 심는 기념식수 행사를 연다.

신동진기자 shine@donga.com
#언더우드가#선교사#원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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