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대기자의 人]이만우 사장 “불편하다는 것은 곧, 화학이 나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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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제정 ‘공유가치 창출 포터賞’ 한국바스프 이만우 사장

이만우 사장은 “오늘날 모든 산업은 화학의 뒷받침 없이는 존재하기 힘들다”면서 “미래의 화학산업은 각 분야의 성과를 통합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이만우 사장은 “오늘날 모든 산업은 화학의 뒷받침 없이는 존재하기 힘들다”면서 “미래의 화학산업은 각 분야의 성과를 통합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디하이드로젠 모노옥사이드(DHMO)는 무색 무취 무미한 물질로 매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인은 우연한 흡입에 따른 것입니다. DHMO는 심한 피부 장애와 온실효과의 원인이며, 산성비의 주성분입니다. DHMO는 미국의 거의 모든 하천과 호수, 저수지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DHMO의 제조와 확산을 금지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더 큰 오염을 막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반대 운동에 서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DHMO가 두 개의 수소(디하이드로젠)와 1개의 산소화합물(모노옥사이드)인 일산화이수소(H₂O), 즉 ‘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황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서명을 시작했던 학생은 “제대로 된 과학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사마키 다케오·재밌어서 밤새 읽는 화학이야기).

이 해프닝은 화학과 화학산업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선입견이란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과 몰래 버리는 오폐수, 후유증이 무서운 사고와 환경 파괴를 일삼는 기업의 탐욕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런 기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화학물질관리법으로 개정하며 의무사항과 단속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화학산업이 오명을 씻기 위해 노력 중이고, 우리 생활과 산업에 큰 기여를 하는 분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화학산업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지난달 26일 한국바스프의 이만우 사장(57·스페셜티 사업부문장)을 만났다. 그는 성균관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30년간 화학 외길을 걸어왔다. 2011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한국바스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본보가 제정한 ‘CSV(공유가치 창출) 포터상’을 지난해 말 수상한 기업이어서다. 성장을 하면서 사회문제까지 해결한 기업들에 주는 영예로운 상으로 한국바스프는 공유가치 이념을 사내외에 잘 전파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독일의 모기업 바스프가 지난해 창립 150년을 맞은 세계 최고의 다국적 화학기업인 것을 알고는 회사와 제품에 대한 관심은 접었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아서다. 그 대신 화학산업 전반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인류는 인구과잉과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이 이론을 뒤집은 것이 바로 화학이다.”

이 사장의 첫말이다. 바스프가 1913년 세계 최초로 ‘하버-보슈 공법’을 개발해 질소비료를 생산함으로써 식량 증산에 크게 기여했다는 말이다. 바스프를 자랑하기보다는 화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얘기한 것이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2050년이 되면 현재 67억 명의 인구가 최대 9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의 반쪽이 더 필요하다. 자원과 환경을 보호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며, 삶의 질까지 담보하기 위해선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화학산업의 고민이다.”

그런 고민을 왜 유독 화학산업이 해야 할까. 그만큼 화학산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뜻일 것이다. 화학업계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거대한 변화(메가 트렌드)에 도전하고 있다.

이 사장은 화학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글로벌 과제로 자원 환경 기후, 식량과 영양, 그리고 삶의 질 등 크게 세 분야를 꼽았다. 연관 산업으로는 수송, 농업, 건설(건축), 에너지, 자원, 소비재, 전자, 건강과 영양 분야 등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경량 자동차, 고효능 배터리, 효소, E-전력관리, 기능성 작물, 효율적 열관리, 바이오 작물, 물 문제 등에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먹거리, 약품과 환경, 재료 등의 전 분야를 커버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몇 가지 연구 과제를 자세히 설명했다.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이 자동차 경량화 분야다. 연비를 높이기 위한 자동차 경량화는 세계적 트렌드이긴 하지만 단순히 가볍기만 해서는 안 된다. 가벼우면서도 강하고 편리하고 쾌적해야 한다. 자동차의 내부 소재는 모두 최첨단 소재로 바뀌고 있고, 자동차 연료와 첨가제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효율이 높은 하이브리드 엔진과 미래 전지를 누가 선점하는지에 따라 자동차 회사의 명운이 갈린다. 모두 화학의 영역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쟁이 엔진과 디자인에서 화학과 전기전자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만 하더라도 요즘은 원하는 벌레, 원하는 균, 원하는 잡초만 없애는 제품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들 제품군의 이름에서 ‘죽이고 없앤다’는 말을 빼고 ‘작물보호제’로 부르기 시작했다. 콩을 발효시켜 얻은 비타민B는 이미 영양제와 사료첨가제로 쓰이고 있다. 싹이 틀 즈음에 저절로 분해가 되면서 비료로 바뀌는 필름(비닐)의 상용화도 머지않았다. 이 사장이 들었던 많은 예 중 일부분이다.

이런 도전들이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상상이 잘 안 간다면 바스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쉽다. 회사이름 바스프(BASF)는 ‘바덴(B)의 아닐린(A)&소다(S) 파브릭(F)’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즉 처음에는 조그만 염직회사였다. 그런 기업이 현재는 직원 11만3000여 명에 8만 개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동안 염료, 비료, 고압합성품,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을 통해 생활과 세상을 바꿔왔다. ‘우리는 화학을 창조한다(We create chemistry)’는 바스프의 모토는 그런 자부심의 표현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래의 화학산업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 사장의 말을 종합해 보면 두 가지 키워드가 나온다. 하나는 통합이고,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다. 통합이란, 예를 들자면 자동차, 건축, 가전제품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이룩한 화학기술을 연계해 최대한의 시너지를 내는 일이다. 한 분야만이 아니라 전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다.

지속가능성은 연구와 혁신을 통해 유한한 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임으로써 인간과 기업, 미래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앞으로 기업이 팔아야 할 것은 물건만이 아니라 윤리와 신뢰, 솔루션과 비전이라는 말이다.

최근 100년간 인류공통의 관심사는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 정보화로 옮겨왔다. 그 다음의 화두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공유경제 주창과 미래예측으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향후 가장 중요해질 세계적 이슈를 3개만 꼽아 달라”고 하자 “셋도 필요 없다. 딱 한가지, 기후 변화다”라고 한 것은 엄살이 아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인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경고다. 세계 굴지의 화학기업들이 ‘지구온난화’를 도전과제로 삼고 있는 이유다.

한국의 화학산업은 세계적 수준과 비교할 때 어디쯤 와 있을까. 이 사장은 화학산업은 피라미드구조로 되어 있는데 위에서부터 베이직(기초화학), 중간체, 스페셜티로 나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베이직에서는 우수하고, 중간체에서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공존하며, 스페셜티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나 원천기술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스페셜티란 고객과 기업의 요구에 맞춰 개발한 고부가가치 화학제품군. 이 사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제하면서도 “한국의 화학산업은 자생력을 갖고 있고 수출도 많이 한다.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이나 구성원들의 역량도 좋은 편이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화학산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이다. 화학산업이 거의 모든 산업에 꼭 필요한 산업으로 변모하면서 발전의 여지가 늘고 있고, M&A를 통해 기업들이 커지고 있으며, 하이테크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고급인력을 더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직업안정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사장을 인터뷰하며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다. “화학기업들은 어느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으며 바스프의 강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였다. 장황하게 설명할 줄 알았는데 그는 “우리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기업이 잘하는 것도 있다. 우리 제품을 팔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른 기업에서 사오는 것도 있다. 화학산업은 컬래버레이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치열하게 경쟁을 하지만, 혼자서도 존재할 수 없는 게 화학산업이라는 뜻이다. 기업 내의 시너지도 중요하지만 경쟁기업과의 시너지도 필요하다는 뜻일까.

그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불편하다는 것은 곧 화학의 일거리라는 뜻이고, 이는 화학산업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화학산업의 존재가치와 기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응축한 말로 들린다.

요즘 젊은이들은 ‘케미스트리’를 줄여 ‘케미’라고 한다. “두 배우의 케미가 맞는다”고 하면 호흡이나 궁합이 잘 맞는다는 뜻이다. 지식의 부족으로 화학과 화학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느낀 것은 있다. 요즘의 화학산업은 미래와 인간에게 ‘케미’를 맞추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의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결과를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협심증 치료약으로 개발한 비아그라… ‘다른 용도’로 대박▼

보톡스-껌-사카린-발모제… 일상 속으로 들어온 화학

화학 하면 복잡한 공식이나 원소주기율표를 외우던 고통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만큼 화학은 전문영역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꾼 화학제품 중에는 당초 개발 목적과는 다른 용도가 확인되면서 더 유명해진 것도 적지 않다.

보톡스는 원래 사시(斜視)와 눈꺼풀 경련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됐으나 눈 주위의 주름살을 없애주는 효과가 확인돼 지금은 광범위 미용약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인 치클은 고무 대용으로 쓰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껌의 원료가 돼 몸값을 올렸다. 설탕 대용으로 인기를 끌었던 사카린은 톨루엔 설파제의 산화반응을 연구하던 미국 유학 중의 독일인 학자가 손을 씻지 않고 샌드위치를 먹다가 강한 단맛을 느낀 것이 계기가 돼 세상에 나왔다.

잘 알려져 있듯 비아그라는 화이자 제약이 당초 협심증 치료약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부작용 관찰 과정에서 탁월한 발기기능을 발견함으로써 발기부전치료제로 대박을 터뜨렸다. 발모제 프로페시아도 처음에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였다. 플라스틱처럼 세상을 다시 한번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그래핀도 얇은 흑연 막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여인형·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

바스프가 단열재로 개발한 멜라닌 폼의 그 후도 재미있다. 나중에 소음을 잡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그 방면에 많이 사용되고 있고, 찌든 때를 닦아내는 효과가 확인되며 ‘매직 블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크레이그 크리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쓰고 하버드대 졸업생 래리 고닉이 그린 코믹 만화책(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화학)은 인류에게 처음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화학반응을 불이라고 했다. 이 책은 ‘돌덩이를 요리하다’ 초록색 돌덩이가 녹아 주황색 액체가 됐고, 그것이 식으니 구리가 됐다고 설명한다. “자신을 갖게 된 사람들은 붉은색 돌에서 철을 얻고, 진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고, 지방과 재를 볶아서 비누를 만들고, 배추를 발효시켜 김치를 만들게 됐다.” 화학이 우연과 필연의 조합으로 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화학은 요즘 요리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분자요리학이라는 분야다. 음식은 손맛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망할지 모르지만 맛있고, 창의적이며, 새로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학적 지식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요리는 화학적인 예술이므로, 주방에 온도계를 두는 걸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라파엘 오몽·부엌의 화학자).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한국바스프#비아그라#분자요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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