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딛고 대표 연설… 뇌 노화 연구한 68세 박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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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졸업 화제의 2人

경영학과 정원희씨

정원희 씨가 24일 오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환하게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정원희 씨가 24일 오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환하게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자신을 믿는 만큼 성장하고 발전한다.”

28일 열릴 제69회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선정돼 연설을 앞둔 정원희 씨(25·여)가 밝힌 졸업 소감이다. 정 씨는 뇌성마비로 알려진 선천성 뇌병변 장애를 가진 2급 중증장애인이다. 올 4월 한국투자공사에 취업해 현재 주식운용실에서 리서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09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정 씨는 신입생 시절 몸의 제약으로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느꼈다. 정 씨는 “MT에 가서 남들처럼 뛸 수도 없고, 춤·스포츠 동아리에 들 수도 없었다”며 “처음으로 내 몸이 별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씨의 생각이 달라진 건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였다. 처음 맡은 배역은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였다. 정 씨는 “휠체어를 탄 오필리아는 나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누구나 다른 몸을 가졌듯이 나 역시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정 씨는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홍익대와 구로동 일대에서 14회에 걸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정 씨의 대학 생활은 활동적이고 다양했다. 1학년 땐 동기들과 함께 싱가포르로 여행을 떠났고, 연구원 신분으로 미국에 다녀오는 등 대학 시절 20여 개국을 경험했다. 특히 2012년 교환학생으로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공부하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선진국의 시선이 부러웠다고 밝혔다. 정 씨는 “소수자를 위한 인사관리 과목이 따로 있을 정도”라며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학문적으로 승화시킨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도 배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후배 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했다.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정신지체 아동들을 위한 보조교사를 했다. 정 씨는 “장애인들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순 있다”며 “우리 사회는 다르고 느린 것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고 꼬집었다.

정 씨의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삶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씨는 초등학교 때까지 자신에게 장애가 없는 것으로 알고 지냈다고 한다. 정 씨는 “장애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11년 석박사 과정 끝낸 김재익씨

고희를 앞둔 나이에 뇌과학 박사학위를 받는 김재익 씨가 25일 서울대 교정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고희를 앞둔 나이에 뇌과학 박사학위를 받는 김재익 씨가 25일 서울대 교정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고희(古稀)를 앞둔 노인은 자신의 연구 결과 이야기를 하는 내내 즐거워했다. 28일 서울대에서 뇌과학 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인 김재익 씨(68)는 뇌 연구에 푹 빠져 있었다.
김 씨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그는 1969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진학했다. 섬유공학을 선택한 건 당시 패션업계에 취업하면 대우가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씨는 “고교 시절 집안 형편이 당장 먹고살 게 걱정이어서 취업이 잘되는 서울대 공대를 갔다”고 말했다.

졸업 후 김 씨는 대기업인 제일모직에 다녔고, 새로 시작한 사업도 번창해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더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생긴 김 씨는 우연한 기회에 초심리학 분야의 책을 읽고 영혼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이를 위해선 뇌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교인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2004년 석사과정을 시작했지만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 대학과 달리 외국인 교수가 수업을 하고, 모든 교과서는 외국어로 된 원서였다. 김 씨는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며 “강의를 녹음해 집에 와 다시 들으며 곱씹었다”고 말했다.

석사과정의 뇌 해부학 시험 날엔 운영하던 봉제공장에서 불이 났다. 김 씨는 급하게 화재를 수습하고 시험에 응했다. 결과는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가장 큰 고비는 박사과정 기간이던 2013년 전립샘암에 걸린 때였다. 학회지에 낸 논문 심사를 기다리는 중에 암이 발병했고, 1년 반 동안의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김 씨는 완쾌한 후 학교로 복귀했고 논문은 재심사 끝에 통과됐다.

김 씨의 연구결과는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교육수준에 따라 뇌의 노화 속도가 다르다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7년여 동안 300번이 넘는 실험 끝에 얻은 결론이다. 지도교수인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해외 유명대학에서도 김 박사의 연구 결과에 대해 문의한다”며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에 의미 있는 연구 결과”라고 평가했다. 서울대 뇌과학협동과정에선 김 씨의 논문과 관련한 후속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김 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난 때문에 깊이 공부할 수 없는 환경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학교가 아니더라도 계속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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